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민주당은 물론 투자자들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시장의 기반을 흔드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19일(이하 현지시각) AP통신,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의 회견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파월 의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를 해임하고 싶다면 아주 빠르게 해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도 “파월의 해임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밝히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파월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으나 이후 금리 인상을 이유로 트럼프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트럼프가 최근 강행하고 있는 수입관세 정책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 연준이 금리를 유지하자 다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고문은 CNBC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이 파월 해임 가능성을 계속해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싯은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연준 의장의 조기 해임이 시장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지만 이날 인터뷰에서는 “시장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파월 의장은 이번 주 시카고 경제클럽 연설에서 “연준은 정치적 압력과 무관하게 미국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결정할 것”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은 법률에 의해 보장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사임을 요청하더라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관세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어 당분간 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증시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뢰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 ISI 부회장은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위협이 구체화될 경우 시장은 즉각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며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과 투자 심리 위축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미국 정가의 유력 정치인인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뉴욕증권거래소 연설에서 “파월과 금리정책을 두고 충돌해본 적 있지만 그를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며 “연준이 대통령의 마법지팡이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라면 미국은 더 이상 민주국가가 아니라 삼류 독재국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연방노동위원회의 민주당 위원들을 조기 해임한 사건을 두고 대통령의 독립기관 수장 해임권한 범위를 심리 중이다. 이 판결 결과에 따라 파월 의장 해임 여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 의장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미국 투자자들은 금리 정책보다 정권에 흔들릴 수 있는 연준의 정치화를 가장 큰 리스크로 받아들이고 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책 신뢰도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