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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약株, 트럼프 관세 폭풍 속 '안전지대'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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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약株, 트럼프 관세 폭풍 속 '안전지대'로 부상

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산업 휘청이는 가운데, 견조한 주가 흐름
해외 매출 비중 높은 대형 제약사 중심 강세... 관세 영향 제한적
일본 제약주들은 다가오는 관세 위협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제약주들은 다가오는 관세 위협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사진=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이은 관세 부과 위협으로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일본의 주요 제약 회사들이 이례적인 강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의 '안전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 등 다른 주요 제조업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잠재적인 25% 관세 부과 가능성에 속수무책으로 시장 매도세를 겪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22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은 다케다 제약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케다 제약은 매출의 89%를 해외에서 거두어들이고 있으며, 특히 미국 시장이 전체 매출의 51.5%를 차지한다. 이처럼 높은 미국 시장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다케다 제약의 주가는 이달 들어 일시적인 하락세를 보였으나 연초 대비로는 여전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다케다의 주요 혈장 제품이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어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스위스 제약 회사 로슈가 61%의 지분을 보유한 츄가이 제약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츄가이 제약은 이달 초 주가가 급락하는 변동성을 겪었으나,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기술 이전한 경구용 비만 치료제 오르포글리프론의 3상 임상 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발표된 후 빠르게 반등하며 연초 대비 19%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츄가이 제약은 해외 사업 대부분을 로슈에 위탁하고 로열티 수입을 얻는 사업 구조 덕분에 직접적인 관세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분석이다.

이 외에도 시오노기 제약은 GSK의 HIV 치료제 사업부인 ViiV 헬스케어에 HIV 치료제를 라이선싱하여 매출의 절반 이상을 로열티 형태로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등, 직접적인 무역 거래 비중이 낮은 제약사들이 트럼프發 관세 위협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주가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제약 업종이 상호 관세에서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니다. 리서치 회사 BMI는 25%의 부문별 관세가 여전히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지난 4월 1일 미국 상무부는 의약품 수입 의존도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섹션 232 조사를 시작한 바 있어, 향후 관세 부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다가오는 관세율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그리고 진통제부터 항생제, 첨단 항암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약품에 적용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또한, 이러한 관세 조치가 제약 기업들의 투자 및 혁신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예측하기 어렵다. BMI는 "기업들은 관세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비용 구조와 시장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프로젝트 진행이나 사업 확장을 주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약주들은 지난 4월 2일 상호 관세 발표 이후 일시적인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후 빠르게 회복하며 연초 대비 대부분 긍정적인 주가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맥쿼리 캐피털의 애널리스트들은 지난 4월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선진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펀드가 미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자금을 순환 이동시키면서 일본 제약 회사들이 투자자들의 피난처로 여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BMI 역시 혁신적인 특허 의약품에 대한 수요는 가격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비탄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잠재적인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UBS의 의료 분석가 사카이 후미요시는 "사람들은 가격표가 올랐다고 해서 항암제 복용을 중단할 수 없다"며, 특히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쉽게 약을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카이 분석가는 또한 "관세가 부과되면 의약품 가격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아질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결국 비용 증가 부담을 환자, 보험사 또는 제조업체 중 누가 지게 될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은 지난 3월 발표된 대외 무역 장벽에 관한 연례 보고서에서 일본에 미국의 혁신적인 의약품이 일본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촉구한 바 있다. 관세 부과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이자 가장 중요한 제약 시장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UBS의 사카이 분석가는 강조했다.

다이와 증권의 제약 분석가 하시구치 카즈아키에 따르면, 일본 제약 회사들은 평균적으로 매출의 40%를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생산 기지가 미국 내에도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관세 영향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했고 전 세계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어 상황은 복잡하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를 예로 들면, 일본 제약사 에자이는 파트너사인 바이오젠의 스위스 공장에서 이 약물을 생산하고 있다. 스위스가 미국으로부터 31%의 상호 관세를 부과받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남아있다.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스미토모 제약은 이달 초 과민성 방광암, 전립선암, 자궁근종 치료제 등 3가지 주요 제품이 모두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다는 우려로 30% 급락했으나, 이후 파킨슨병 치료제에 대한 긍정적인 임상 시험 결과 발표에 힘입어 39%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였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의 브래드 세서 선임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제약 회사들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 세율이 낮은 국가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면서 의약품 공급망이 더욱 복잡해지는 추세이다.

실제로 미국의 의약품 무역 적자는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증가하여 2024년 미국의 전체 무역 적자 1조 2천억 달러의 11%를 차지할 정도이다.

일본 역시 미국 및 유럽과의 의약품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19 백신 수입 급증으로 인해 수입액이 크게 늘었으며, 이러한 높은 수입 수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다이와 증권의 하시구치 분석가 등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 제약 산업이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적자 감축 캠페인의 주요 타겟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UBS의 사카이 분석가는 "관세 문제가 현실화될 경우, 제약 회사 경영진은 100% 현지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과 로열티 기반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고 전망하며, "일본에서 혁신적인 신약 개발이 지속되는 한, 생산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