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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對美 관세 협상 앞두고 '엔화 약세' 방어 고심…美 환율 압박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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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對美 관세 협상 앞두고 '엔화 약세' 방어 고심…美 환율 압박 대비

가토 재무상, 베센트 장관과 환율 논의 의사 밝혀… 금리 인상 등 美 요구 가능성 경계
트럼프, '엔화 약세=불공정' 주장… 플라자 합의 재현 우려 속 BOJ 독립성 시험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장관이 환율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장관이 환율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로이터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엔화 약세 문제에 대한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엔화 환율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히며, 미국의 환율 개입 요구 가능성과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압력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냈다고 23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가토 재무상은 22일 일본 국회에서 "베선트 장관과 환율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것임을 확인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에 대해서는 "시장 투기를 불러일으키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언급을 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일본이 자국 수출 산업에 유리하도록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부가가치세 및 수출 보조금과 함께 환율 조작을 8가지 "비관세 불공정 행위" 중 하나로 지목하며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지난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정정책담당상이 베선트 장관을 만났을 때 환율 문제는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으나, 일부 시장 관측통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무역 적자 해소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내세워 일본에 외환 시장 개입 등 무역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달러화는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는 추세이며, 미국 달러화 지수는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은 22일 한때 9월 이후 처음으로 140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는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번 미일 재무장관 회담이 달러 강세 흐름을 조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즈호 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 수석 시장 이코노미스트는 "베선트 장관이 엔화 강세를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할 경우, 시장 투기를 더욱 부추겨 엔화 절상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1985년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가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체결했던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환율 조정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인 스티븐 미란은 지난 11월 각국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매도하여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미국 금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장기 국채를 매수하는 '마라라고 합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직면해 있다. 플라자 합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 따른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다자간 공조였지만, 현재 워싱턴 스스로가 보호무역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다자주의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 고위 통화 관리인 야마사키 다쓰오는 "당시와 같은 조율된 개입을 통해 통화 수준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당국자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며,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서면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JP모건 체이스 은행의 수석 외환 전략가인 다나세 준야 역시 "이번 회의에서는 통화 문제가 관세 협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토 재무상이 회담 후 기자들에게 어떤 내용을 밝힐지가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엔화 강세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부 재무부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 개입과 같은 인위적인 조치보다는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을 선호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을 압박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통화 정책을 관세 협상과 연계시키는 것은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민감한 문제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18일 국회에서 중앙은행이 "관세의 영향을 포함한 대내외 경제 및 물가 상황과 시장 동향을 주의 깊게 확인한 후 적절하게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통화 정책 결정의 자율성을 분명히 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킨다면, 일본이 엔화 약세를 시도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은행이 통화 정책을 완화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MUFG 은행의 이노 텟페이 도쿄 글로벌 시장 리서치 책임자는 시장이 "지나치게 신중하다"며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요구가 나오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이전의 달러 매도를 철회함에 따라 엔화는 곧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주 동안 엔화가 달러 대비 8엔 가까이 강세를 보인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반전은 상당한 규모일 수 있다.

결국, 이번 미일 재무장관 회담의 핵심은 미국이 엔화 환율 문제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요구를 할 것인지, 그리고 일본이 자국의 통화 정책 주권을 지키면서 미국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달려있다. 양국 간의 미묘한 신경전 속에서, 회담 결과는 향후 미일 경제 관계뿐만 아니라 글로벌 환율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