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말레이시아, 미·중 무역 갈등 속 '중립 외교' 시험대 올라

글로벌이코노믹

말레이시아, 미·중 무역 갈등 속 '중립 외교' 시험대 올라

美, 대중국 의존도 축소 압박...농산물 수입 확대 등 대가 요구 가능성
중국, 아세안의 '反中 전선' 합류 경계… "단호하고 상호적인 방식" 대응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7월까지 중단됨에 따라 말레이시아 등 여러 아세안 국가들이 워싱턴에서 무역 회담을 열게 됐다. 사진= AFP/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7월까지 중단됨에 따라 말레이시아 등 여러 아세안 국가들이 워싱턴에서 무역 회담을 열게 됐다. 사진= AFP/연합뉴스
말레이시아가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양대 경제 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고 23일(현지시각)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텡쿠 자프룰 압둘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부 장관은 고위급 무역 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 무역 당국자들과 회담을 갖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말레이시아의 '중립적' 역할을 강조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은 말레이시아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을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회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말레이시아산 대부분의 상품에 대해 24%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불공정하게 이용한다고 비난한 국가들을 겨냥한 광범위한 관세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번 워싱턴 회담을 이끄는 텡쿠 자프룰 장관은 회담에서 아시아와 미국의 공급망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중립적' 행위자로서 말레이시아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말레이시아가 양대 교역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정학 분석가 아스룰 하디 압둘라 사니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언급하며 "말레이시아와 아세안은 미국과 중국 모두 똑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지를 제시하며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과 손잡고 '반중 전선'에 합류하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21일 각국이 아시아 초강대국인 중국을 명시적으로 겨냥한 거래를 미국과 체결할 경우 "단호하고 호혜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미국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에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은 중국 공급망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제3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자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1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한 중국은 이번 주 후반 비공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소집하여 미국을 비난할 예정이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을 괴롭히고 있으며, "평화와 발전을 위한 전 세계의 노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수지에서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아세안 10개 회원국 대부분에 대해 24%에서 49% 사이의 상호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담을 갖는 세 번째 아세안 국가가 될 예정이다. 그리어 대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90일간의 관세 동결을 발표하기 전에도 거의 50개국이 관세 문제 논의를 위해 USTR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의 이번 워싱턴 회담은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USTR은 특히 지난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레이시아 방문 이후 말레이시아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에 대해 자프룰 장관과 그의 대표단을 강하게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 자문 회사인 ADA 동남아시아의 파트너 아스룰은 "USTR은 아마도 말레이시아로부터 미국산 수입품, 특히 무역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농업 부문에서의 수입을 늘리겠다는 보장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세아스-유소프 이샤크 연구소의 캐시 리 선임 연구원은 "국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에게 총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텡쿠 자프룰 장관 역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미 특정 산업을 덤핑 수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입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중국 수출업체를 차단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중국이 말레이시아와 다른 아세안 국가들을 통한 중국 상품의 환적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계속해서 판매하기를 원한다면 중국 이외 지역에 제조 시설을 설립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회사들이 아세안 국가를 통해 미국에 판매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아세안 국가로 이전하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베트남산이나 말레이시아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말레이시아는 이번 워싱턴 회담에서 미국의 압력과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립적 역할'을 강조하며 양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말레이시아의 외교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국 견제 정책 속에서 어떤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