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이 미국 캘리포니아를 떠나 해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지 노동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최근 폭스방송의 인기 퀴즈쇼 ‘더 플로어(The Floor)’는 제작 여건이 충분한 로스앤젤레스(LA)를 두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촬영지를 옮겼다. 출연진 100명과 유명 배우인 사회자 롭 로우를 대서양을 건너 보내는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제작사는 "해외 촬영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두 차례 파업 이후 급등한 인건비, 그리고 해외의 우수한 세제 혜택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헝가리,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인프라가 잘 갖춰진 데다 제작비용이 저렴해 주요 제작사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미국 영화·TV 촬영 허가를 관리하는 필름LA에 따르면 LA 지역의 영상 제작은 10년 전보다 3분의 1 이상 줄었다. 국제무대극장노조(IATSE) 소속 마이클 밀러 부회장은 “캘리포니아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디트로이트처럼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캘리포니아 내에서만 약 1만8000개의 풀타임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샌 안드레아스’, ‘도착’ 같은 영화도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촬영됐다. 영화 제작자 애런 라이더는 “부다페스트의 포시즌스 호텔 로비에서는 LA보다 더 많은 업계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넷플릭스 공동 CEO인 테드 사란도스는 향후 4년간 멕시코에 10억달러(약 1조373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지난 2월 발표했고 마블 영화들도 기존의 조지아주 대신 영국으로 제작지를 옮기고 있다.
제작비 문제도 크다. NYT가 확인한 예산안에 따르면 헝가리에서 30일간 7명으로 구성된 ‘그립(조명 및 세트 설치팀)’을 고용하는 데 5만9000달러(약 8100만원)가 드는 반면, LA에서는 건강보험과 연금 등 부대비용을 포함해 단 한 명의 숙련된 그립을 고용하는 데 약 5만3000달러(약 7270만원)가 소요된다.
이같은 추세에 대응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세금 감면 예산을 두 배 이상 확대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주의회에서는 더 많은 제작물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논의 중이나, 고임금 배우나 감독에 대한 공제 제한 등 일부 조항을 두고는 찬반이 갈리고 있다.
이처럼 제작지 이탈 현상이 본격화되자 업계 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섰다. LA 인근의 40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 수백 명이 모여 ‘짐 싸지 말고 카메라 돌려라’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가구를 옮기는 일을 해온 노동자 나딘 메히아는 “지난 2월과 3월에 단 하루씩밖에 일하지 못했다”며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프로듀서 보 플린은 “이건 존재의 위기이자, 멸종의 위기”라며 “우리는 지금 헐리우드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