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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딥페이크 포르노로 무너진 삶"…CNN "한국서 AI 성범죄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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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딥페이크 포르노로 무너진 삶"…CNN "한국서 AI 성범죄 심각"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딥페이크 기술로 인한 성범죄가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CNN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여름 가명 '루마'로 불리는 한 27세 대학생은 점심을 먹던 중 충격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얼굴 사진이 나체 사진에 합성돼 텔레그램 채팅방에 유포됐고 익명의 발신자는 "네가 네 섹스 비디오를 보는 게 웃기지 않냐"며 조롱하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루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이미지들에 폭격당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CNN은 과거 한국에서 몰래카메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했지만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이 확산되면서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학생, 교사, 교직원 등 900명 이상이 학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를 신고했다. 이 수치는 대학 피해자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긴급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지난해 9월 딥페이크 포르노를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행위에 대해 최대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부과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비동의 딥페이크 영상 제작 및 유포 행위의 최대 형량도 기존 5년에서 7년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CNN은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딥페이크 관련 성범죄 신고 964건 가운데 실제 체포는 23건에 불과하다"고 서울지방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지적했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NN에 "수사와 처벌이 아직 너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루마는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직접 행동에 나섰다. 2020년 한국 최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폭로해 유명해진 활동가 원은지 씨의 도움을 받아 남성 행세를 하며 텔레그램 채팅방에 잠입해 2년에 걸쳐 정보를 수집했다. 이후 경찰과 공조해 주범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고 서울대 출신 학생 2명이 지난해 5월 체포됐다. 이 중 주범은 징역 9년, 공범은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해자는 졸업식, 결혼식, 가족 행사에서 촬영된 사진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루마는 CNN와 인터뷰에서 "검찰 구형과 일치하는 판결이 나와 기쁘지만 아직 1심이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피해를 입은 김 모 씨도 CNN에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얼굴을 합성해 누드 사진을 만든 조작물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건 직후 경찰에 신고했지만, 트위터(현 X)로부터 사용자 정보를 받으려면 서면 요청이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답변을 듣고 스스로 조사에 나서 범인을 특정했다.

김 씨는 "딥페이크가 실제 내 몸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여론이 너무 억울하다"고 밝혔다.

CNN은 또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텔레그램을 지목했다. 2020년 대규모 경찰 수사 이후 일시적으로 위축됐던 텔레그램 내 성착취 생태계는 이후 다시 확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프랑스에서 체포된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불법 콘텐츠 관리 미흡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이후,텔레그램은 한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요청에 따라 디지털 성범죄 영상 148건을 삭제했으며 핫라인을 구축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은 올해 1월 한국 수사기관이 처음으로 텔레그램으로부터 범죄 관련 데이터를 받아냈다고 발표했다. 이 수사를 통해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14명이 체포됐으며 이 중 6명은 미성년자였다. 이들은 2020년부터 200명 이상의 남성과 여성을 상대로 딥페이크 성착취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CNN은 "피해자들은 더 강력한 처벌과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은 가해자가 많아 완전한 정의 실현은 요원하다"고 전했다. 루마는 CNN에 "처벌이 강화되더라도 잡히지 않는 가해자가 훨씬 많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