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개요
지난 7월 11일(일),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 등의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59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시위는 아바나시 남서쪽 30km에 위치한 산안토니오 데 로스 바뇨스시에서 시작됐으며, 해당 내용이 SNS 등을 통해 전파된 후에 수 시간 내에 전국 20여 개 지역으로 확대됐다.
쿠바 내 시위 발생 지역
자료: Inventatio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정부 지지세력에게 이번 시위와 관련 '거리로 나와 시위대와 맞설 것’을 요구했으며, 정예군, 경찰 및 사복요원 등을 투입해 시위 발생 반나절 만에 시위대 해산을 이끌었다. 몇 차례의 난투극이 벌어지고 시위대 일부가 체포됐으나 대규모 유혈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발포 및 구타 장면과 일부 시위대가 경찰차를 뒤집는 등의 영상 등이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등 양세력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향후 추가 시위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어 불안한 정국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우리는 반혁명세력, 용병, 미국 정부 및 제국주의 추종자,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매수된 자들, 이념 전복의 모든 전략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현재 쿠바가 겪고 있는 경제 및 보건 위기는 미국의 금수조치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발표하며, 이번 시위를 ‘혁명에 반하는 체계적 도발’이라 규정했다.
쿠바 반정부 시위 현장
자료: AFP
이번 시위는 발생 하루 전인 토요일, SNS를 통해 조직됐으며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산안토니오 시내 가두 시위로 시작됐다. 이후 경찰과의 대치 장면 등이 SNS를 통해 전파되자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해당 시위를 지지하는 세력이 집결하며 대규모로 확산됐다.
쿠바 정부의 공식발표 부재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확산된 11일 오후부터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서 핸드폰 모바일 데이터(3G) 접속이 불가한 상태이며, 외국기업 및 정부 주택 등에 주로 설치된 유선 인터넷도 특정 사이트 접속 불가, 속도저하 등 정상적인 접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 서반구 차관보 대행인 쥴리 지윤 정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 정부가 "쿠바에서 '싸우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우리는 쿠바 국민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권리를 지지한다. 우리는 진정을 촉구하며 모든 폭력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쿠바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거주하는 미국 마이애미, 마드리드, 멕시코시티 등 주변국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열렸으며 해당 시위 현장에서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구호 ‘조국과 삶’을 비틀어 만든 음악인 ‘조국과 삶’이 울려펴졌다.
미 마이애미 내 쿠바 반정부 시위 현장, 쿠바 힙합가수 요투엘 로메로 연설
자료: AFP
시위 이튿날인 7월 12일(월)에는 친정부 성향 시민들이 혁명정부 지지 구호를 외치며 아바나 시내를 행진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정치 성향에 따른 국민 간의 갈등 및 분열 가능성이 쿠바 사회의 가장 큰 불안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쿠바 친정부 시위대
자료: Granma
한편, 이번 시위의 기폭제가 된 쿠바의 현재 경제 및 보건 위기가 미국의 제재, 코로나19의 확산, 관광객 급감에 따른 외환 수입 감소 등의 외부 변수에 기인해 단시일 내에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바, 최악의 민생고에 시달리는 쿠바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위 발생 배경
이번 시위는 1990년대 구소련 붕괴 후 대규모 식량, 에너지난이 발생한 '특별시기'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 및 물자 부족으로 평가되는 최근의 쿠바 경제 상황에 코로나19 확산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발생했다.
1959년 혁명 이후 쿠바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시위는 1994년 수도 아바나에서 발생했으나 당시에는 수도에 국한돼 수백 명만 참가했다. 당시 경찰, 정보요원, 건설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신속대응반의 탄압이 이뤄졌으며, 인터넷 등이 없던 관계로 타지방에 거주하던 많은 쿠바인들은 당시 발생한 일에 대해 알지 못했다.
- 경제 / 외환 부족 및 인플레이션
쿠바 경제는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서비스수지 흑자를 통해 상쇄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2019년 무역수지: -82억 달러, 서비스수지: 92억 달러). 그러나 미국의 제재 강화 및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가장 큰 외환 수입원인 전문인력(의료진 등) 해외파견 및 관광산업이 급감하며 심각한 외환부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2022년 이후에야 단계적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성적인 외환 부족으로 인해 쿠바 정부는 2018년 하반기부터 대외 수입대금 미결제 현상이 발생했으며, 2020년에는 대쿠바 주요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대해 채무상환 유예를 요청(2021년 6월, 양측은 향후 상환일정 등에 대해 비공개로 합의)하는 등 외환수급 불균형 현상은 코로나19의 확산과 맞물려 한층 더 심화됐다.
부족한 외환 수급을 해결하기 위해 2019년 하반기부터 도입된 외국환 상점은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나 자국화폐 사용이 불가하고 외화 신용(직불)카드만 사용되는 까닭에 외화 수입이 없는 일반 쿠바인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외환 수입의 급감, 고질적인 채무 지연 등으로 인해 전반적인 생필품 수입이 위축돼 쌀, 우유 등의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으며, 의약품 등의 부족현상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반 페소화 매장이 점차 사라지고 부족한 생필품조차 외국환 상점 위주로 공급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정부 배급품목의 대폭 축소가 이뤄지며 기초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는 국민들의 불만이 치솟았다.
또한 2021년 1월, 구소련 붕괴 후 극심한 식량, 에너지난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이중화폐제도가 27년 만에 폐지되며 그간 수입물가 안정 등의 목적으로 유지돼 왔던 이중화폐제도/다중환율제도가 단일화됐으나 부족한 외환 수급 대비 높은 수요로 공식 고정환율에도 암시장에서 페소화는 약 2배 평가절하돼 거래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오마바 정권의 대쿠바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상당부분 철회(헬름스-버튼법 발동, 여행제한 조치, 송금제한 조치, 항공기 운항 제한, 대테러 비협력국 재지정 등)하며 제재를 강화하며 쿠바로의 외화 유입을 강력히 차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세기간 중 일부 조치에 대한 완화를 언급했으나 현재까지 특별한 변화가 없어 쿠바의 외환부족은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2020년 쿠바 경제는 11.3%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며, 공식 급여(페소화)와 실질 생활비(미달러) 차액을 보완하기 위한 지하경제가 급등해 그 규모를 측정하기 불가할 정도로 방대해졌다.
- 코로나19 / 자체 백신 개발에도 확진자 급증
쿠바 정부는 자체 개발 중인 5개의 백신 후보군 중 2개의 백신(Soberana 02, Abdala)의 예방효과가 세계보건기구 요구기준(50%)을 충족했다고 발표, 연내 총 1억 도스 분량의 생산과 30여 개국으로의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수도 아바나를 중심으로 백신접종이 이뤄지고 있으며, 현재 전체 인구의 14.2%(161만 명)가 백신접종을 완료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 내 일 확진자 수는 연일 최대치를 갱신하며 7월 11일 기준 6923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감염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초기, 약 7개월간의 국경 폐쇄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처했던 쿠바 방역 시스템이 이제는 그 한계치를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 확산 예방을 위해 장기간 이뤄지는 정부의 조치(야간 통행금지, 항공편 축소, 식당 및 관광지 영업 금지, 휴교 등)에 대해 많은 쿠바인이 불편을 느끼며 좌절과 피로가 누적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물자 부족 및 방역 강화의 이유로 생필품 구입을 위해 반나절 가까이 상점 외부에서 대기하는 것이 일상화되며, 국민의 불만이 치솟은 것으로 판단된다.
쿠바 백신 후보군 현황
- Soberana 02: 합성항원백신, 62% 예방효과(2회 접종) · Soberana Plus를 추가 접종 시 예방효과 91.2%로 상승 - Abdala: 합성항원백신, 92.28% 예방효과(3회 접종) - Soberana Plus: Soberana 02 백신의 부스터 샷으로 면역효과 상승 - Soberana 01: 현재 임상실험(2상) 중 - Mambisa: 현재 임상실험(2상) 중 코에 분무하는 백신(mucosal vaccine)으로 알려짐 |
- 인터넷 보급 확대 / 익명성을 활용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
쿠바는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2008년에서야 가정용 인터넷이 보급됐다. 이마저도 외국인 거주용 정부 주택 및 정부기관 등에 국한됐다. 2019년 핸드폰 모바일 데이터(3G)의 도입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해 현재 총인구의 약 65%(720만 명)가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나 인터넷 정책에 있어서는 중국과는 노선을 달리해 일부 웹사이트를 차단했지만 SNS 접속은 막지 않았으며 이에 쿠바 시민들은 SNS를 통해 일상 속 관심사와 불만 등을 공유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2021년 2월, 미국에 거주 중인 쿠바 출신의 유명 힙합가수인 요투엘 로메로, 헨테 데 소나, 데세메르 부에노 등 여러 뮤지션들이 협업한 ‘조국 그리고 삶(Patria y Vida)'이 유튜브에 공개되며 당시 17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조국 아니면 죽음(Patria o Muerte)’은 피델 카스트로가 외친 구호로, 해당 음원은 쿠바가 겪는 식량난과 반체제 예술가 탄압 등을 비판하며, 뮤직 비디오에는 시위 장면과 불타는 쿠바 국기 등의 이미지가 포함돼 있는 등 그간 SNS에 공개된 반체제 게시물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 이후로도 쿠바인들은 SNS를 활용해 일상생활에 대한 불편함을 표출하며 쿠바 정부가 공식 계정을 통한 대응을 여러 차례 이끌어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구, 주로 젊은 연령대의 사용자들이 Facebook, Twitter 및 Instagram에 접속하고 있으며, 쿠바 정부 또한 해당 플랫폼을 활용해 국영 미디어의 공식 담론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은 공식 미디어에 일반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주제에 대한 보도를 하는 수많은 독립 미디어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이에 예술가, 언론인 및 지식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는 채널이 됐다. 2020년 11월 정부가 단식투쟁을 벌이는 일부 젊은 예술가들의 집에 침입한 후, 이를 비판하는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조직된 시위도 있었다. 당시 쿠바 내에서는 별다른 조직적 움직임이 없었지만 이러한 움직임으로 쿠바인들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만 게시물이 증가했다. 반정부 세력은 쿠바의 경제위기 원인에 미국의 제재도 큰 원인이 되겠지만 정부의 관료주의, 일당 독재체제 등이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주장한다.
전망
1당 체제인 쿠바에서의 시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발생하더라도 소규모 집단으로 이루어지고 빠른 시간 내 조치되는 형태를 띠었으나 이번 시위는 과거와는 달리 SNS를 기반으로 하는 빠른 확산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4월 개최된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를 통해 공산당 제1서기직으로 선출된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다시금 정치적 시험에 들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이전 세대들과 달리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지 않은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반정부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경제 살리기가 필수이며, 이는 개방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쿠바의 근본적인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엠바고 완화/해제가 핵심 이슈이기 때문에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쿠바 정책 변화 여부 및 이를 위한 양국 간의 외교 협상이 절실하나 쿠바 정부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바,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정책 또한 미-쿠바 간의 관계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시위 이튿날인 7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쿠바 정부의 향후 경제계획 및 코로나19 방역계획 등에 대해 발표했으나 시위 주도세력은 SNS를 통해 추가 행동을 계획 중이라고 밝히며 정국 혼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 로이터 등 주요 외신, Granma 등 쿠바 정부기관지 및 KOTRA 아바나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