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벤처 1세대라 할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이 지난 9월 한 언론사 주최 컨퍼런스에서 우리나라 지도 반출 문제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 이사장은 “구글에 대한 지도 반출 결정을 유예함으로써 네이버는 유리해지고 구글은 불리해졌다”면서 “과거와 같이 (기업 등) 공급자 중심 경제에서는 공급자 보호 정책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폐쇄형이 아니라 개방형으로 가고 있는 만큼 개방 쪽으로 국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글에 지도를 내주면 안되는 합리적 근거와 반론이 그의 주장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것도 사실이다.
“구글에 (5000분의 1)지도를 준다면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이 내주도록 해야 한다.”
서정헌 전 한미연합사지형분석실장(그리니치코리아 대표)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구글지도 반출 문제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구글에 지도를 절대 내 주면 안된다는 가장 강력한 반대주의자 중 한명이다. 서대표의 주장은 국방안보, 산업경제 안보, 역사안보 등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국가안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방안보는 말그대로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관계에서 북한에 우리나라를 정밀타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도 전문가다운 이론적 배경에 근거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3D지도와 우리나라의 수치지도를 겹칠 때 오차 15cm에 불과한 정밀지도를 (그것도 공짜로) 내 줄 때 국방외교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구글이 이런 우리나라 절대적 국방안보 문제에 대해 무성의로 일관한다면 지도를 반출할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또 ‘경제 산업 안보’ 차원에서도 “한국내 4차산업혁명을 위한 보검과도 같은 존재(지도)의 가치를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다. 기술에 관한 한 오픈 마인드가 중요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금괴를 왜 길거리(구글)에 뿌리느냐”고 반문한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사장역시 디지털 시대에 지도를 내주는 것은 산업적 안보에 반하는 것은 물론 과거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일에 버금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와 업계차원의 혁신적 대응책이나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구글에 정밀지도를 내 줄 경우 수많은 중소벤처기업들이 구글생태계에 복속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고 말한다.
업계에서는 USTR의 통상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등 대처하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지형공간정보업계의 한 이사는 “미국정부가 나서서 우리정부가 지도반출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불공정 무역이라는 식으로 통상압박을 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부가 반박한 적이 있나? 국가 인프라는 이런 무역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미국의 억지에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정헌 그리니치 대표는 구글에 5000분 1 지도를 주자는 의견에 대해 ‘역사안보’적 차원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에 대해 “독도를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하는 것 같은 구글의 정책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지도반출 찬반 대립 구도를 해소시키는 대안으로 어떤 방식이 제시되고 있을까?
컴퓨터업계의 L모 사장은 “구글이 우리나라 지도를 가져가 사용하면서 전세계적 이익을 발생시키는 만큼 그에따른 비용을 지불토록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차원용 박사(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위원)는 구글지도 반출요청과 관련, 또다른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그는 “구글의 자율주행차 특허를 보면 엄청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자율주행차로 실어 나르던 화물을 드론으로 연계해 운송하는 시스템, 30분의 1 수준의 초정밀 지도 제작 기술 등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다. 우리정부가 구글에 정밀 지도를 주는 대가로 이런 기술을 받도록 해야 한다. 구글에 기술에서 앞설 수 없다면 5000분의 1 지도와 첨단 지도제작 기술 등을 교환하는 윈윈방식도 지도 반출허락의 전제조건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처럼 구글에 대안없이 우리나라 정밀지도를 반출해 가도록 허가하는 데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설득력 또한 만만치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5000분의 1 지도는 이미 다가온 로봇,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결합해 이뤄질 4차산업혁명의 보물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기반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세계 어느 국가도 갖지 못한 4차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최상의 테스트베드를 자유로이 전세계에 허용하고 있다. 구글, MS, 인텔, 엔비디아 등 전세계 주요기업은 너나 할 것없이 한국을 세계최고의 테스트 베드로 입에 침이 마르게 치켜 세우고 있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사용률,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우리국민의 빠른 응답 속도 등은 전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는 디지털 및 모바일시대 기술개발의 귀한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이런 상황에서 4차산업혁명 시대의 먹거리 토대인 지도데이터를 제공해 우리의 미래를 외부의 힘에 종속되도록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할 필요는 없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 의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는 23일 이전에 구글 지도 반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가 지도반출을 허용하라”는 말보다 더 정곡을 꿰뚫는 말도 없을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국외반출협의회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과 미래창조과학부·외교부·통일부·국방부·행정자치부·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형공간정보 업계 관계자들은 이 협의체의 책임주체가 분산되면서 지도 반출법이 오히려 느슨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은 “국토지리정보원장 주재 하의 이 협의체에는 해당 부처 과장급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 실제로 각 부처장관이라든가 누군가 분명한 책임자가 모습을 비춘 적이 없다. 책임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지도반출법 개정시 법이 개악됐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13년 개정된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16조(기본측량성과의 국외 반출 금지) 1항에서는 “누구든지 국토교통부장관의 허가 없이 기본측량성과 중 지도등 또는 측량용 사진을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외국 정부와 기본측량성과를 서로 교환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해 국토부 장관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하지만 2014년 6월 개정된 동법률 16조 2항을 보면 “누구든지 제14조 제3항 각호(1.국가안보나 그 밖에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2.다른 법령에 따라 비밀로 유지되거나 열람이 제한되는 등 비공개사항으로 규정된 경우)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본측량성과를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국토교통부장관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국방부장관, 안전행정부장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등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국외로 반출하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밝히고 있다.
지형공간정보 관련 협회의 한 관계자는 “더 이상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도 불분명해졌다. 구글지도 협상에서 보여준 정부의 비전없는, 무조건적으로 지도를 내주려는 듯한 태도로 인해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재구 기자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