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진료 경쟁은 인공지능(AI)과 잘 컬래버레이션(협진)하는 의사와 그렇지 못한 의사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의사는 사용하는 의사와의 대결에서 백전백패할 것이다...환자 집 근처 의원에도 인공지능이 도입돼 대형 병원 수준의 진료를 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왓슨 암센터’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해 12월 5일 모든 뉴스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의료계의 알파고’로 불리는 AI 왓슨 도입 3개월 만에 이를 이용한 대장암 환자 진단 및 치료 결과를 발표하면서다.
결과적으로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은 ‘의료계의 알파고’로 불리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 과 대등한 진단 및 치료방식을 내놓으며 높은 암진단 및 치료 실력을 입증한 셈이 됐다. 이후 병원의 인기가 치솟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왓슨 도입을 주도한 이언 단장은 “우리나라 암환자의 70%, 암치료비의 90%가 이른바 ‘빅 4’로 불리는 유명병원에 몰린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인천을 비롯한 지역 암환자 150명 정도가 찾아오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경우 이미 미국 IBM과 1만 회 왓슨 진료권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중국 전역의 병원에 되팔고 있다”며 중국의 인공지능 진료 분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박사는 “AI 진료시 가장 어려운 점은 환자의 의료 관련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는 점”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각 병원에 쌓여있는 환자 개인정보를 ‘식별되지 않는 방식’으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최근 이같은 번거로운 문제 해결 필요성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왓슨 암센터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왓슨 운용현장의 실상과 애로사항을 보고 들은 정의장은 4차산업지원법 국회 상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흔쾌히 약속했단다. 동석한 홍남표 미래창조과학부 과기전략본부장, 김강립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등도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렇게 되면 단 몇분이 아니라 몇초 만에 인공지능에 의한 진단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 단장은 의료진단에 왓슨같은 AI를 도입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로 환자의 합리적 의심을 꼽기도 했다. 환자들로서는 ‘바쁜 의사선생님이 암에 걸린 자신의 진료 기록을 보셨을까’, ‘최신 학술지를 잘 소화하시기는 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엄청난 양의 환자 이력 및 학술 데이터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왓슨은 충실한 협력자다.
이언 단장은 2014년 세계최대 암병원인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 케이터링 암센터(MSKCC)의 왓슨도입 성과에 자극받아 이를 도입할 생각을 했고 이길여 가천대 길병원 이사장의 결심을 얻어냈다.
왓슨 도입 과정을 설명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길병원이 아무리 노력하고 실력있다 해도 이른바 빅4(서울대병원,연세대병원,삼성병원,아산중앙병원)를 따라갈 수 없었다. 빅4는 우리만큼 절실하지 않았다. 게임체인지가 되면 안되니까. 물론 길병원 내부의 도입 반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총론에는 찬성이지만 각론에서는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하지만 결국 하기로 했다.”
이 박사는 “왓슨의 실력은 의대교수 수준”이라고 말했다. 왓슨과 의료진의 진단이 일치하면 환자에게 신뢰성을 준다. 여러 병원을 전전할 필요도 없다. 이보다 더 큰 성과는 암환자에게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게 해 주는 것이란다.
그는 같은 왓슨을 써도 국내와 국외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료결과는 표준화돼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언단장으로부터 왓슨 도입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 왓슨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 왓슨 도입은 미꾸라지 양어장에 메기가 들어온 것과 같다. 의사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이전보다 환자진료를 위해 더 준비를 잘 해 온다. 자칫 망신 당할 수 있기에. 그 자체만으로 환자에게 엄청나게 좋은 효과다. 책 한 줄 영상 하나 더 보고 오지 않겠나? 물론 최종 진단 및 치료 책임은 의사가 진다.”
환자들이 의사보다 왓슨을 더 신뢰한다는 보고가 나온 데 대해서도 이박사의 생각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별 거 아니지만 중요한 시그널이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AI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이다. 과거에는 진료를 하면 일반통행식이었다. 의사가 문헌을 검토해서 보라고 하면 끝이었는데 이젠 왓슨이 환자에게 레포트를 보여주고 상호소통하는 양방향으로 간다. 의사는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
이언박사는 조만간 미국 IBM에서 도입한 왓슨의 한국화도 실행에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왓슨으로 촉발된 의료분야 4차산업혁명은 이제막 시작됐다.
이재구 기자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