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실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텐센트의 OTT 서비스 '텐센트 비디오'에 이달 들어 홍상수 감독의 2018년작 영화 '강변호텔'이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죽음을 앞둔 시인의 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예술영화로 기주봉·김민희·권해효·송선미 등이 출연했다.
중국 미디어 검열기구 국가신문출판서는 지난 7월 님블뉴런 '이터널 리턴' IP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 '이터널 리턴: 인피니트'를 온라인 게임 출판심사번호(판호) 목록에 포함한 데 이어 이달 들어 갤럭시 매트릭스의 '신석기시대'에 판호를 발급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중국 정부가 콘텐츠 시장 전반에 대한 규제 완화 기조에 발맞춰 '한한령'의 문턱 또한 낮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7년, 주한미군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이른바 '사드'가 배치된 후 한국 콘텐츠들의 중국 진출을 적극 저지해왔다.
또 지난해부터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 시간을 주당 3시간으로 제한하는 '강력 셧다운제' △황금만능주의·냥파오(미소년)·선정적 내용 등 '불량 문화' 검열 강화 △연에인 인기 차트·팬 단위 모금·음반 중복 구매 금지 등 엔터테인먼트계 규제 등 다방면으로 콘텐츠 사업을 옥죄어왔다.
그러나 올 4월,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만에 온라인 게임 판호를 발급한 데 이어 11월까지 총 6차례 판호를 발급했다. 또 지난해 관영 신문들이 '투기 키워드' 딱지를 붙이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메타버스'에 대한 시선도 상하이 시 정부가 올 7월, 베이징 시 정부가 8월 핵심 비전으로 지목하는 등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중국 음악영상저작권관리협회 산하 게임출판위원회는 지난 22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 미성년자 게임 중독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됐다"고 발표했다. 홍콩 매체 남화조보는 이를 두고 "엄격한 규제에 따른 지금의 시장 침체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제시된 것"이라고 평했다.
규제 완화 기조의 신호탄은 지난달 마무리된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로 보인다. 전당대회에선 그간 주석 임기를 10년 단위로 유지한다는 관행을 깨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으며, 후진타오 전 주석의 계파 등 친 시진핑파 외 핵심 인사들은 공산당 중앙위원 명단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미르의 전설 2' IP 보유사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중국의 정치적 이벤트가 끝나고 정국이 안정화 수순을 밟고 있다"며 "게임사들의 중국 내 사업 전개가 조금 더 활기를 띌 것으로 전망한다"고 평했다.
업계인들 사이에선 '한한령 해제'나 규제 전면 완화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보인 행보는 단순한 '김빼기'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유력 콘텐츠 업체가 중국을 떠나려 한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의 개발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4년간 함께해온 중국 현지 파트너사 넷이즈와의 협력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블리자드가 새로운 파트너사를 찾지 못하면, 내년 1월부로 블리자드 게임들의 온라인 서비스가 중단된다.
이번 발표 직후 중국의 대형 게임사 텐센트, 미호요 등은 블리자드와 파트너십을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스포츠비즈니스저널(SBJ)은 이를 두고 "텐센트 산하 라이엇 게임즈의 '발로란트'도 2년째 판호를 받지 못했다"며 "블리자드가 단기간에 중국 내 서비스를 재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조치를 두고 "상품성이 높지 않은 콘텐츠들을 일부 해제하는 일종의 '경쟁력 실험'"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지금의 정권은 자국 콘텐츠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기 전까진 절대로 빗장을 풀지 않을 것이며, 이번 조치가 한한령 해제로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한국게임학회는 중국의 콘텐츠 검열 문제에 있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판호 발급 등은 현재 중국이 스스로 시혜를 베푸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며 "중국 정부에 강력한 주문, 요구를 하지 않는 한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