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한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은 액션성, 사운드, 아트웍, 최적화 등 다방면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게임 마니아 층에게는 특히 '소울라이크', 즉 다크소울류 게임이 '난이도와 액션성 외에도 세계관과 캐릭터 등 서사적 완성도 또한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게임으로 손꼽힌다.
크래프톤의 신생 자회사 플라이웨이게임즈가 데뷔작으로 선보인 '트리니티 서바이버즈'는 P의 거짓이 그러했듯 장르 전체의 진일보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뱀서라이크',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류 게임 특유의 낮은 진입 장벽과 타격감을 유지한 채 매력적인 세계관, 온라인 협력 등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더해진 덕분이다.
트리니티 서바이버즈(이하 트서)는 이름 그대로 '뱀서'의 문법에 충실하다. 정해진 시간 동안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이 오를 때마다 3개 중 하나를 선택하며 '덱빌딩'을 하듯 자신의 성장 방향을 정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게임을 진행할 수록 다양한 스테이지와 캐릭터, 장비 등을 해금하고, 초기 능력치를 성장시키는 요소도 구현돼 있다.
뱀서의 몬스터들이 '흡혈귀'란 테마에 맞춰 좀비, 박쥐 등으로 구성됐다면 '트서'의 주요 적은 오크다. 근접 공격을 하는 오크와 원거리 공격을 하는 오크, 나중에는 다양한 보스 몬스터형 오크들이 출동한다. 여기에 '시체꽃', '오우거' 등 오크들이 부리는 동식물도 등장해 변주를 준다.
트서와 뱀서의 결정적 차이점은 '트리니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세 명의 캐릭터가 한 팀이 돼 움직인다는 점이다. 게임에는 현재 '아르기스', '스페독', '레나', '타나', '제임스', '네리아' 등 여섯 캐릭터가 구현됐다.
각 캐릭터는 기본 성능과 별개로 고유의 '리더 스킬'을 보유해 어떤 캐릭터를 리더로 하느냐,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각 스테이지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조합을 찾는 전략성도 게임의 중요한 흥미 요소로 작용한다.
또 다른 특별한 콘텐츠는 2인 협동 플레이다. 뱀서를 비롯한 로그라이크 게임들은 대체로 1인 단위 플레이를 지원하며, 이용자 간 경쟁은 정해진 점수를 겨루는 랭킹 경쟁 등이 구현되는 경우는 있었어도 직접적인 온라인 상호작용이 들어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단연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세계관이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하프 드래곤 '아르기스', 이중인격자 그렘린 '스페독', 사이코패스 엘프 '레나', 알콜 중독자 드워프 '타나' 등 모든 캐릭터들은 제각기 고유한 종족과 무언가 엇나간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캐릭터성은 그래픽이나 성우 더빙 음성 외에도 아르기스는 상대를 밀치는 공격을 하고, 레나는 사이코패스답게 리더가 되면 '블러드킬(적을 죽이면 일정 확률로 추가 보상을 얻는 기능)' 확률이 높은 등 게임적 요소로도 구현됐다. 이 외에도 공격력을 낮추며 다른 효과를 얻는 장비의 제작자 이름이 '무딘'인 등 깨알 같은 유머 요소들도 눈에 띄었다.
비정상적인 주인공들이 종족을 막론하고 모여 3인 1조로 전투를 벌이는 이유 또한 세계관적으로 설명된다. 오크들의 대규모 창궐로 인해 세계가 위험에 처했다는 내용은 아주 독특하진 않지만, 게임성과 주인공들의 설정과는 적절히 맞아 떨어진다.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저주가 풀리는 장비들도 있어 주인공 일행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잘 짜여진 캐릭터와 세계관은 캐주얼하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이에 대비되는 어두침침한 분위기, 피 튀기는 액션이 공존하는 것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캐릭터와 세계의 내막을 담은 이야기, 이른바 '로어'는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천천히 공개되는데, 이 역시 게임에 몰입하고 더욱 플레이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트서는 스팀에서 31일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 형태로 출시됐다. 스토리적 완결성이나 캐릭터 사이 보다 밀접한 상호작용 등 아직 부족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전투와 게임 디자인, 특히 삽화와 텍스트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세계관은 정식 서비스에 기대감을 가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플라이웨이게임즈는 크래프톤에서 '보다 빠르고 기민하게 이뤄지는 게임 개발'을 모토로 지난해 10월 출범한 신규 법인이다. 플라이웨이란 이름에는 '새들이 집단으로 움직이며 형성하는 이동 경로'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들의 데뷔작 '트서'가 뱀서라이크란 장르는 물론 플라이웨이게임즈에게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