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업계 터줏대감 엔씨소프트(NC)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공동대표 체제를 출범한다. 대내외적 난제 극복을 위해 게임 개발 실무와 전문경영인이 대표 역할을 분담,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NC는 정기 주주총회를 8일 앞둔 20일, 온라인으로 '공동대표 체제 미디어 설명회'를 개최했다. 김택진 대표와 더불어 주총을 통한 취임을 앞둔 박병무 신임 대표 내정자가 직접 등장해 기업의 향후 전략을 발표하고 기자들이 사전에 전한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택진 대표와 박병무 대표 내정자는 공통적으로 2024년이 '생존을 위한 변화가 필요한 해'라고 짚었다. 생존을 도모해야 할 위기에 직면한 이유로는 △코로나19에 따른 IT업계 전반의 운영 비용 급등 △포화 상태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심화된 국내 게임 시장 △회사의 급성장에 따른 내부 시스템 비효율화 등 3가지를 지목했다.
회사의 창업주로서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를 겸임하고 있는 김 대표는 게임 개발 실무에 집중할 계획이다. 게임사로서 NC의 주요 과제로는 △IP 간 스핀오프, RPG 외 장르 발굴 등 '새로운 재미 창출' △대외 협 강화를 통한 '글로벌 시장 역량 확보' △리더십 발굴, AI 도입 등 '새로운 게임 개발 방법론 구축' 등 3가지를 지목했다.
박병무 대표 내정자는 NC 사외이사로 17년 동안 재임해 왔다. 변호사 출신으로서 로커스홀딩스, 뉴브리지캐피탈, 보고펀드 등의 대표직을 거쳐 지난해까지 인수합병(M&A) 전문 기업 VIG파트너스의 대표를 맡아왔다. NC는 이러한 점을 토대로 그에게 경영 체제 정비, M&A 등 외부 사업을 맡길 계획이다.
김택진 대표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박병무 대표 내정자는 베테랑 기업가 출신으로, 기업 위기 상황을 해소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분"이라며 "회사 내적인 운영은 물론 사업 발굴, 외부 투자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박 대표 내정자와 협의를 통해 결정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병무 대표 내정자는 새로운 대표로서 가진 비전으로 △핵심 경쟁력 중심의 경영 효율화 △데이터 기반 시스템 고도화 △글로벌화를 위한 기틀 구축 △대외 투자·M&A 강화 등 네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글로벌화와 M&A 등 외부 사업이 키워드에 포함됐으나, 박 대표 내정자가 보다 중요시한 것은 NC 자체의 역량이었다. 그는 "사외이사 시절부터 NC가 최고의 게임사라고 자부해왔으며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NC는 자체 IP 개발 역량, 다인원이 접속 가능한 서버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게임 라이브 운영 경험, 글로벌 투자를 선도한 혁신성 등 여러 측면에서 최고의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NC가 경영 효율화, 조직 개편에 있어 강조한 것은 '원 팀(하나의 팀)'이란 키워드였다. 박 대표 내정자는 "재무적 수치만 보며 조정을 하는 것이 아닌 내부의 좋은 역량, 핵심 경쟁력을 재발견하기 위해 임직원들과의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며 "문자 그대로의 경영 효율화보다는 조직력과 상호보완성을 토대로 내부의 역량을 하나로 묶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M&A에 관해서도 외연 확장보다는 회사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박 대표 내정자는 "회사를 옮길 때마다 M&A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아왔고, 항상 원론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1순위로 보는 것은 NC의 본질인 '게임' 분야의 투자이며, 게임 외 영역에 있어서도 NC와 사업 시너지가 날 것인지, 지속 가능한 분야의 사업인지 등 다각도로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사주 취득, 소각 등 주주 가치 제고 조치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도 "NC의 주식은 시가총액(20일 기준 약 4조1600억원)이 보유한 유동 자산·부동산 등을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과소평가돼 있다. 이는 매도세가 과도하게 집중되며 일어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면서 "자사주 소각 등 단편적인 조치보다는 회사의 가치를 장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M&A 등을 계획 중이다"라고 답했다.
또 "M&A 외에도 게임 개발 환경 개선, 조직 개편 등 경영진의 모든 활동은 기업 가치의 향상을 목표로 두고 있다"며 "주주 분들께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대표 취임 이후의 방향성 외에도 NC가 카카오게임즈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 지난해 4월 신규 출범한 NC의 노동조합, 오는 22일 시행을 앞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법안 등 최근 현안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변호사 출신으로서 저작권 소송에 대한 관점을 묻는 질문에 박병무 대표 내정자는 "제작자들이 혼을 넣어 만든 작품을 베낀다는 것은 게임사업에 있어서, 법조인으로서, 나아가 산업 전반에 걸쳐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모든 리니지 라이크, MMORPG에 법적 제재를 가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나,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표절을 행한 게임에 대해선 엄중하고 신속한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조합 문제에 관해서는 "노동자 권리 문제는 게임업계를 넘어 IT업계 전체에 있어 중요한 화두라 생각하며 노조를 비롯한 내부 직원들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지속하겠다", 확률형 아이템 관련법에 대해서는 "고객들이 확률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계속 고도화하겠다"고 답변했다.
NC가 '원 팀'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게임사가 거론됐다. NC는 지난해 아마존 게임즈,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등 해외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여기에 게임 분야는 물론 AI(인공지능) 등 신사업 분야에 있어서도 대외 파트너십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김택진 대표는 "국내외 협력 관계 강화의 일환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만날 자리도 마련돼 있으며 해외 AI 업체와의 협력 등도 계획하고 있다"며 "앞으로 NC가 거둘 글로벌 성과에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