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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게임사 '블리자드', 어떻게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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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게임사 '블리자드', 어떻게 몰락했나

블리자드 과거 다룬 '플레이 나이스' 출간
2008년 모회사 된 액티비전과 경영 갈등
상업성 강조, 게임 사업 몰이해로 충돌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스타크래프트 2' 엔딩 장면 갈무리. 사진=스타크래프트2 인게임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스타크래프트 2' 엔딩 장면 갈무리. 사진=스타크래프트2 인게임 캡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게이머들에게 물으면 으레 '국민 게임사'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에서 이들이 개발한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말까지 수많은 게임들은 한국의 '국민 게임'으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국민 게임사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함께 언급되는 키워드는 '몰락'이다. '과거의 영광', '이젠 추억일 뿐', '예전에는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와 같은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심지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와 '하스스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히오스)', '오버워치 2' 등 블리자드 게임을 여전히 플레이하는 이들이 이런 말을 내놓는다.

◇'님폰없'과 히오스 사태…블리자드 암흑기의 시작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공식 아트웍. 사진=블리자드이미지 확대보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공식 아트웍. 사진=블리자드

블리자드가 게이머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서' 그 이상이다.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모두 매력적인 세계관과 시네마틱 컷씬 연출,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했다. 이는 게임을 넘어 서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 즉 '팬덤'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스타크래프트는 또한 한국에서 e스포츠를 태동시킨 게임으로, 워크래프트 3는 글로벌 e스포츠 종목으로 자리잡은 게임이다. 이는 2010년대 신작인 '하스스톤'과 '히오스', '오버워치' e스포츠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즉 블리자드의 게임은 단순히 게임을 넘어 다층적인 IP로서 팬들과 함께하는 콘텐츠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블리자드의 명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흔히 2018년 말을 꼽는다. 이해 10월, 1993년 블리자드의 창립부터 함께했던 초대 대표 마이크 모하임이 회사를 떠났다. 경영진 내부에 잡음이 있었다는 설이 제기됐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게이머들은 크게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 다음달인 11월 열린 블리즈컨 2018, 블리자드는 모바일 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을 회사의 핵심 차기작으로 소개했다. PC 게임 위주로 블리자드를 바라봐온 팬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개발진은 "여러분은 스마트폰이 없나요?", 이른바 '님폰없'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당겼다.

12월에는 '히오스' e스포츠 대회를 별도 유예 기간 없이 폐지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며 다시 한 번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앞서 언급했듯 e스포츠 팬들에게 블리자드는 단순한 종목사 하나를 넘어 e스포츠의 '총본산'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런 블리자드가 하루 아침에 e스포츠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2021년 7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블리자드를 '사내 성추행·성차별' 문제로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직원의 일탈을 넘어 개발에 관여한 핵심 임원급 중에서도 가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WOW에선 개발 임원의 이름을 딴 NPC가 사라졌고, 오버워치의 캐릭터 '맥크리' 역시 하루아침에 '캐서디'로 이름이 바뀌었다.

◇플레이 나이스 "경영진 간 갈등이 추락 원인"


10월 8일 출간 예정인 책 '플레이 나이스' 표지. 사진=아마존닷컴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10월 8일 출간 예정인 책 '플레이 나이스' 표지. 사진=아마존닷컴 캡처

블리자드의 이와 같은 암흑기를 탐사 보도했던 제이슨 슈라이어 블룸버그 게임 전문 기자는 최근 '플레이 나이스: 블리자드의 중흥과 몰락, 그리고 미래(Play Nice: The Rise, Fall, and Future Of Blizzard Entertainment)'란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고 발표했다. 그가 기자로서 여러 게임인들을 취재해온 것을 토대로 약 3년에 걸쳐 저술, 10월 8일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매진 게임 네트웍스(IGN)와 게임스팟, 유로게이머, 80Lv 등 외신들이 해당 책 내용을 사전 분석한 기사 내용들을 종합하면 블리자드에 암흑기가 닥친 근본 원인은 블리자드와 모회사인 액티비전 간의 경영 갈등이었다.

액티비전이 블리자드를 인수한 시점은 2008년으로, 이때 양사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로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2'와 '하스스톤' 등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한편으로는 액티비전과 블리자드 경영진 간 갈등으로 8000만달러(약 1조원)의 개발 예산을 투입했던 신작 프로젝트 '타이탄'을 취소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블리자드에 머물렀던 지오 헌트 메타 플랫폼스 오큘러스 스튜디오 이사는 이에 관해 "바비 코틱 전임 액티비전 대표는 타이탄에 관해 블리자드에 'IP에서 충분한 상업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압력을 가했다"며 "이는 블리자드 임직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양사 간 갈등의 또 다른 주체로 아민 제르자 액티비전 블리자드 최고 재무 책임자(CFO)가 지목됐다. 2015년까지 소비재 유통 기업 P&G에 재임했던 그는 이 해 코틱 전 대표에 의해 블리자드의 CFO로 영입됐다. 그는 2021년 본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 CFO로 승진해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잇다.

외신들의 '플레이 나이스' 분석 기사에 따르면 제르자 CFO는 부임 후 "해외 시장에 게임을 더 빨리 배급하기 위해 현지 거점이 필요하다"고 발언하거나 차기작 발표 행사 블리즈컨을 "재무적 수익률이 낮다"고 지적하는 등, 소비재 유통 사업의 재무적 논리를 블리자드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큰 손' MS 자회사 됐지만…여전히 불투명한 미래


게임 '오버워치 2'에 출시된 '워크래프트' 시리즈 컬래버레이션 스킨들의 모습. 사진=블리자드이미지 확대보기
게임 '오버워치 2'에 출시된 '워크래프트' 시리즈 컬래버레이션 스킨들의 모습. 사진=블리자드


내부적 갈등과 외부로 표출된 악재 끝에 블리자드의 모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2022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가 결정됐다. 지난해 10월 마무리된 인수 계약의 금액은 총 754억달러(약 99조원)로 게임업계에 유례가 없는 '세기의 빅 딜'이 성사됐다.

새로운 모회사를 찾은 후의 블리자드를 팬들은 아직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인수가 마무리된 직후 가장 먼저 알려진 소식은 구조 조정이었다. 마이크 이바라 당시 블리자드 대표를 포함한 인력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고, 미공개 신작 프로젝트 '오디세이'가 백지화됐다.

블리즈컨 2024의 개최 또한 전면 취소됐다. 오는 11월은 블리자드를 대표하는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출시 30주년이자 WOW의 출시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지만, 별도의 오프라인 행사 없이 '조촐한' 기념일이 될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플레이 나이스'에서 언급된 갈등 양상 신작 백지화, 블리즈컨 취소 등이 MS 산하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암흑기에 들어선 블리자드지만, 여전히 이들의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적지 않다. 2004년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WOW를 즐기고 있다고 밝힌 한 업계인은 "이런 저런 게임을 해봤고, 독하게 접겠다고 마음을 먹어본 적도 있지만 결국 블리자드 게임으로 돌아왔다"며 "함께 하는 사람들과 추억이 담긴 게임을 놓아주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022년 7월, 블리자드가 공식적으로 업데이트 종료를 선언한 '히오스'의 랭크 게임을 최근까지도 꾸준히 돌린다고 밝힌 IT업계 관계자는 "블리자드에 여러번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게임에는 잘못이 없지 않냐"며 "결국 게임사는 게임으로 말하는 것이고, 신작이 재미 있게 나온다면 얼마든지 잃은 명성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블리자드는 오는 10월 9일, '디아블로 4'의 첫 확장팩 '증오의 그릇'을 출시한다. WOW에서도 올 8월 확장팩 10호 '내부 전쟁'을 선보인 가운데 11호 '한 밤', 12호 '최후의 티탄'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세계혼 서사시' 3부작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