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1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삼성전자에 중재안을 보냈다고 밝혔다.
조정위는 “이번 중재의 기조는 반도체 및 LCD 작업환경과 질병과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며 “피해자 구제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개인별 보상액은 낮추되, 피해 가능성이 있는 자를 최대한 포함하기 위해 보상범위를 대폭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조정위는 보상 질병 범위에 대해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골수종, 폐암 등 16종의 암으로 산정했다. 지금까지 반도체나 LCD 관련 논란이 된 암 중에서 갑상선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과 희귀암 중 환경성 질환이 모두 포함됐다.
희귀질환 중에선 다발성 경화증과 쇼그렌증후군, 전신경화증, 근위축성측삭경화증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고 알려진 희귀질환 전체와 유산, 사산을 모두 보상 대상이다. 선천성 기형과 소아암 등이 걸린 근로자의 자녀에 대해서도 전부 보상해야 한다.
지원 보상액은 백혈병의 경우 최대 1억5000만원이다. 사산과 유산은 각각 1회당 300만원과 100만원으로 정해졌다.
향후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별도의 지원보상위원회를 꾸려 보상을 추진한다. 위원장은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합의해 선정하고, 위원회는 전문가와 변호사,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다.
조정위는 반올림 소속 피해자 53명에 대해서는 기존 삼성전자 보상 규정과 이번 중재 판정의 지원 보상안을 모두 적용해 산정한 뒤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반올림 피해자 및 가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기자회견 등 공개적인 방식으로 사과문을 낭독하라고 권고했다. 삼성전자가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500억원의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을 출연하는 안도 중재안에 포함됐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오는 10일까지 지원보상업무 위탁기관,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기탁기관 등을 정하는 데 합의한다. 이달 30일까지 공개 기자회견 형식으로 중재판정 이행을 합의하는 협약식을 연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중재 합의가 이뤄졌고 최종 중재판정까지 내리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뿌듯한 일이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본다”고 소회를 밝혔다.
삼성전자는 “중재안을 만들어준 조정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서둘러 구체적인 이행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반올림은 중재안을 신중히 검토해 내주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한편,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는 2007년 3월 삼성 반도체 3라인에서 근무하던 고(故)황유미씨의 의 사망으로 불거졌다. 이듬해 피해자들이 ‘반올림’을 발족했고 반도체 생산라인에 대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2012년 11월부터 삼성전자의 제안으로 협의를 지속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결국 2014년 12월 삼성전자와 반올림, 가족대책위원회가 조정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2015년 7월 조정 권고안을 도출했지만 조정 과정에서 합의가 무산됐다.
3년 후인 올해 초 조정위가 ‘2차 조정을 위한 공개 제안서’를 양측에 보내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위원회는 기존 조정방식으로는 합의를 끌어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조정위원회가 제시하는 중재안을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사전에 합의하는 방식을 택했다. 양측은 지난 7월 조정안 마련에 합의하며 10년 이상 지속된 분쟁이 종료됐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