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Khan)은 5세기 몽골고원에 세워진 여러 유목국가 군주의 칭호로, 칭기즈칸(1162~ 1227)은 재임 기간 중앙아시아, 중국, 유럽 등을 정벌하면서 몽골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서울 역삼동 쌍용차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앞서 출시 행사에서 첫 만남 이후와 도로 등에서 목격한 렉스턴 스포츠 칸의 이미지는 강력하고 중후하다.
사실 자동차 전문기자로 자부심이 들 정도로 렉스턴 스포츠 칸의 1월 출현은 반가웠다. 쌍용차가 2002년 무쏘 스포츠(2002∼2006년, 2900㏄)로 국내 대형 SUT 시장을 개척했지만, 이후 2000㏄의 액티언 스포츠(2006∼2012년), 코란도 스포츠(2012∼2018년) 등으로 다운사이징돼 기자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번 e-XDi2200㏄ LET 디젤 엔진을 장착한 렉스턴 스포츠 칸은 압도적인 외관에서 오는 무게감과 그러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측면 디자인, 세련미와 고급감을 살린 전후면 디자인 등으로 중무장했다.
서울사무소 주차장에서 본 차량 외관은 렉스턴 스포츠와 똑같다.
롤스로이스처럼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형상화한 라디에이터그릴에는 진공 증착한 재질을 적용했으며, 그릴 역시 종전 코란도 스포츠의 메쉬(그물망) 형태에서 10개의 슬롯 그릴로 변했다.
차량 측면에도 역시 진공 증작한 재질의 4륜구동(4TRONIC) 뱃지가 단순하면서 절제미를 살린 측면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 255㎜, 편평비 50%의 레디알(R) 타이어를 장착한 20인치 알루미늄커팅휠 역시 차량 외관의 고급감을 살리고 있다.
렉스턴 칸의 후면 역시 단순하고, 데크에 렉스턴 스포츠 칸 뱃지와 큼지막한 ‘KHAN’ 로고가 차량의 정체성을 암시하고 있다.
스마트키를 통해 도어를 열고 1열을 일별했다. 렉스턴 스포츠와 칸이 쌍용차의 최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4렉스턴의 유전자를 계승한 만큼 고급감이 그대로 묻어 있다.
단순화 한 계기판 시인성을 높인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디지털화된 각종 차량 버튼과 사각형으로 변모한 기어노브, 그 아래 주행 중에도 도로 상황에 맞게 실시간으로 조정 가능한 이륜과 4륜 변환버튼 등이 모두 세련됐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 중앙에는 G4렉스턴부터 사용된, 종전 쌍용차의 고급 대형세단 체어맨의 입체 엠블럼을 평면화 한 엠블럼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최고급 차량에 적용되는 브라운 계통의 나파가죽은 인테리어에 고급감을 더 하고 있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동승한 카메라 기자가 “가솔린 차량인가요?” 라고 묻는다.
그만큼 쌍용차의 디젤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뜻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쌍용차는 1990년대 독일 벤츠와 기술 제휴로 디젤 엔진을 개발하고 자사 모델에 적용했다. 종종 무쏘 스포츠에 삼각별 벤츠 엠블럼이 붙어 있는 이유이다.
게다가 쌍용차의 모태는 1954년 1월 출범한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로, 유구한 역사로 쌍용차가 디젤엔진 분야에서는 원천 기술도 확보했기 때문이다.
반포대교로 강변 북로를 잡았다. 평일이라 다소 차량이 뜸한 공간에서 가속 페달에 힘을 실자 렉스턴 스포츠 칸은 단숨에 시속 100㎞(1500rpm)을 찍었다.
최근 2000㏄ 차량이 2000rpm에 100㎞를 구현한 점을 감암하면 렉스턴 스포츠 칸의 초반 치고 나가는 힘이 탁월하다. 렉스턴 스포츠 칸은 최고출력 181마력에 최대토크(42.8㎏·m)를 실현했으며, 최대 토크는 렉스턴 스포츠보다 2㎏·m가 개선됐다.
차량이 드문 구간에서 차량을 멈추고 제로백을 시험했다. 칸은 빠른 응답성으로 킥다운 현상 없이 가볍게 100㎞/h에 도달했다. 10초 정도의 제로백을 보였다.
렉스턴 스포츠 칸이 세계 유수의 변속기 전문제작 업체인 일본 아이신(AISIN AW)사의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데 따른 것이다. 2010년대 초반 국산차 중형 세단 ‘M’이 출시 초 킥다운 현상이 발생하자, 변속기를 아이신 제품으로 교체하면서 이 같은 현상을 해소한 바 있다.
이 변속기는 수동 겸용이라 수동 변속기의 손맛에 대한 향수를 다소 다랠 수도 있으며, 기어 노브 상단에 자리한 렉스턴 엠블럼의 감촉도 운전하는 재미를 배가한다.
자유로에 접어 들었다.
이 구간에는 차량이 항상 많지만, 종종 속도를 낼 수 있는 공간에서 가속 페달을 밟자 칸은 120㎞에 1800rpm, 140㎞에 2200rpm, 160㎞에 2500rpm으로 규칙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운전 중 이륜과 4륜 빙판, 4륜 오프로드를 각각 선택했다. 이륜구동의 주행은 경쾌하고, 4륜 빙판은 묵중하고 네 바퀴가 지면을 움켜주는 듯한 느낌이 운전대에 그대로 전해진다.
오프로드 4륜은 경쾌함과 묵중함을 동시에 지녔다.
파주디스플레이 단지를 지나면 차량이 뜸하고, 차선도 왕복 2차선으로 감소한다. 이곳부터 임진각까지는 급회전 구간이 많고 노면도 불규칙하다.
렉스턴 스포츠 칸의 속도를 올리자 100㎞에서 180㎞(2500rpm)까지 10초 만에 오른다.
불규칙한 노면과 고속에서도 칸의 주행은 안정적이다. 그만큼 쌍용차가 칸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시승에서 칸의 속도를 180㎞까지 올리는데 만족해야 했다. 쌍용차가 고객 안전을 위해 속도 제한을 걸어서 이다. 계기판 최고 속도 표시(240㎞)와 타이어의 속도기호 H(210㎞)를 고려하면 칸의 최고 속도는 210㎞ 정도로 추산된다.
급회전 구간에서도 렉스턴 스포츠 칸은 오버스티어링이나 언더스티어링 현상 없이 적확한 핸들링과 코너링을 나타냈다. 쌍용차의 인공지능(AI) 기술이 2월 출시된 코란도에 앞서 칸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렉스턴 스포츠 칸의 안전·편의사양이 수입 대형 세단 못지않다.
칸은 냉온방 시트, 운전석 전동식 요추받침대(4방향), 2열 탑승을 돕는 손잡이까지 고객 편의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사각지대에 차량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사각지대 경고시스템, 주차 시 타이어 정렬을 알리는 시스템, LDWS(차선이탈 경보시스템), HBA(스마트 하이빔), FCWS(전방추돌 경보시스템), AEBS(긴급제동보조시스템), FVSA(전방차량출발알림), 최첨단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8인치 스마트 미러링 패키지, LD(차동기어 잠금장치) 등이 렉스턴 스포츠 칸에 기본으로 실렸다.
임진각에서 적재공간을 살폈다. 차를 주차하자 계기판에 타이어 정렬을 요구하는 문구가 뜬다. 아울러 실내에 자동차 키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렉스턴 스포츠 보다 전장(5405㎜)이 310㎜ 확대된 칸은 이중 110㎜를 축간에, 200㎜는 적재공간에 각각 할애했다. 이로 인해 칸의 적재 공간은 렉스턴 스포츠보다 24.8% 증가한 1262ℓ로 최대 500㎏까지 적재할 수 있다. 타이어의 중량기호가 105(925㎏)인 점을 고려하면 렉스턴 스포츠 칸이 최대 800㎏까지는 무난히 짐을 실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번 시승에서 칸은 고속에서 순간 연비 4㎞/ℓ이고, 복합연비는 국토교통부 승인(9.74㎞/ℓ)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각각 나타났다.
렉스턴 스포츠 칸이 하이엔드(최고급·고기능) 차량이지만,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차량 가격은 2838만원부터 3547만원이다.
이는 코란도 스포츠(2106∼2683만원)와 렉스턴 스포츠(2340∼3265만원, 전장 5095㎜ )보다 다소 비싸지만, 가격 인상 폭은 합리적 이라는 게 쌍용차 설명이다.
이는 자사의 G4렉스턴(3448∼4605만원, 4850㎜), 동급의 국내 인기 SUV 현대차 싼타페(3348∼4295만원, 4770㎜)와 기아차 쏘렌토(2842∼3878만원, 4800㎜)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게다가 렉스턴 스포츠 칸의 연간 자동차 세금이 2만8500원인 점도 매력이다.
쌍용차는 올해 렉스턴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 칸, 코란도 스포츠, 코란도 등으로 사각편대를 구성하고, 내수 판매와 수출을 늘려 회사 정상화 원년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국내에서 단종한 코란도 스포츠의 해외 판매는 지속한다”며 “앞으로 코란도 스포츠 칸과 코란도의 수출 지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경영실적 개선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수남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ere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