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에 진담이 나온다’는 속담처럼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A씨는 기자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알코올이 그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팩트’ 아니면 ‘헛소리’ 둘 중 하나다. 그러나 펀드매니저라는 그의 직업을 감안하면 그의 발언을 취기가 오른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무려 60%에 달하는 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더 이상 한국만의 기업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삼성전자의 한 해 매출은 국내 총생산(GDP)의 약 14%에 달하고 수출 비중은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한국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가운데 국내외 경제 위기 때 꼭 사야할 기업 주식으로 삼성전자를 꼽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삼성전자가 명실상부한 국내 1등 기업이지만 남북 분단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부의 반(反)기업 정책 등 악재에 휘둘리고 있으니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와 관련해 검찰 수사 등 언론 보도에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삼성전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확인이 안 된 수사 내용이 언론에 무분별하게 유출돼 회사는 물론 투자자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삼성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삼성 타도’를 외치는 배경의 중심에는 삼바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삼바 회계 논란이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는 회계처리로 문제가 없다며 이미 2년전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굳게 닫힌 관(棺)이 다시 활짝 열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삼바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같은 사건을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2년 전에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렇다’는 식으로 회계기준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고무줄 잣대로 들이댄다면 사법권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 과정에서 삼바를 포함한 삼성전자 및 관련 계열사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19차례에 걸쳐 압수수색 했다. 특히 검찰은 지난 한 해에만 무려 13차례에 걸친 압수수색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가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지나친 ‘기업 옥죄기’를 하는 것은 국내에서 기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삼성을 둘러싼 여당과 사법권의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프랑스 공포정치의 주인공 로베스 피에르의 ‘저주의 굿판’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는 야당 주장이 크게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기업은 생명체다.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책 투명성과 합리주의를 토대로 활동하는 이익집단이다. 경제 핵심축인 기업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아닌 마녀사냥의 제물이 된다면 기업의 일자리 창출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다.
삼성에 대한 정치권과 사법권의 ‘인민재판식 여론몰이’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얼마전 미국 루이지애나주(州)석유화학공장에 31억달러(3조6000억원)를 투자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면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한 이후 백악관에서 한국 대기업 총수를 면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 회장과 면담한 뒤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 기업으로선 최대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라며 "한국 같은 훌륭한 파트너들은 미국 경제가 어느 때보다 튼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반갑게 맞이했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면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만나 투자를 독려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책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검찰과 법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대기업 걸리기만 해봐라”며 벼르는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류정치와 삼류정치는 이렇게 차이가 난다.
성장과 혁신을 일궈내는 기업인을 수시로 만나는 ‘기업친화 정책’ 이 아닌 ‘기업 때리기’가 난무하는 상황이라면 삼성전자가 이에 환멸을 느껴 한국을 떠나는 ‘섬뜩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김민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