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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열리면 반도체 가격은 하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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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열리면 반도체 가격은 하락한다?

4년 주기 반도체 사이클, 올림픽 때 호황‧월드컵 때 불황
21세기 들어 구조조정으로 승자독식 현상 심화로 사라져
코로나로 팹 증설하지만, 허수주문 안개 걷히면 급락 우려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호황이 끝나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에 대한 전망이 제각각인 가운데, 관련 업계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카타르 월드컵’ 이 끝나는 내년 말경이 하락의 시작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수요산업의 ‘허수 주문’이 그 때부터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2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사이클은 ‘올림픽 사이클’ 또는 ‘월드컵 사이클’이라고 부른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 이어 한국과 타이완까지 다수의 업체가 참여해 경쟁했던 2000년대 이전까지 메모리 반도체(D램 반도체) 경기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했는데, 이를 역시 4년 마다 개최하는 하계 올림픽‧월드컵 대회와 비교해서 비롯한 것이다.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의 개최 간격은 2년이다. 즉, 올림픽이 열리는 해를 전후로 반도체 경기는 아주 좋고, 그 중간이 되는 월드컵 경기 전후로는 가격이 하락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패턴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비유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사이클의 상승과 하락은 반도체 일관공정(fab) 공장 건설 투자 시기와 후방산업의 수급 흐름의 일치 여부에 따라 간극의 차이를 보여왔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살펴봐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 산업 ▲투자직접 산업 ▲첨단기술 집약산업 ▲고청정 산업의 특성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이밍’과 ‘투자액’ 두 가지다.

‘타이밍’, 승자독식 산업의 핵심 과제


타이밍이 중요한 것은 같은 성능의 반도체를 경쟁사보다 나중에 개발하면 판매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업체가 가장 먼저 최신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면 칩 한 개당 60달러에 팔았을 경우, 다른 회사가 같은 제품을 1년 후에 개발하면 1달러 50센트 밖에 받지 못한다.

기술혁신이 지속되는 점도 타이밍의 중요한 요소다. 업계 불멸의 원칙이라 불리는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1년 6개월마다 반도체 직접도는 2배로 늘어나고, 가격은 30% 떨어진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최신형 반도체를 양산하려면 기존 생산장비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무리 비싼 장비라도 감가상각이 3년이면 끝난다.

가장 먼저 신제품을 개발한 기업은 최대한 오랜기간 동안 비싼 가격에 팔기를 희망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어느 한쪽이 망할 때까지 가격을 떨어뜨리는 ‘치킨싸움’을 벌여 경쟁자를 몰아내려고 한다. 따라서 반도체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지 1등을 해야 하고, 어떻게라도 생존하려면 1등의 제품 개발과 속도에 최대한 근접하는 2등은 돼야 한다. 승자독식의 원칙이 매우 철저히 반영되고 있는 부문이 반도체 산업이다.

팹 건설비용 20년 만에 4배 이상 상승


타이완의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을 열기 전까지는 모든 반도체 기업들은 일괄공장(fab, 팹)을 보유하고 있었다. 팹의 건설비용은 기술이 고도화할 수로고 점점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 준공한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의 12라인의 건설비용은 3조 원이었다. 이때 이미 반도체 산업은 투자직접 산업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더 그렇다. 삼성전자는 내년 완공되는 평택캠퍼스 3공장 투자액을 50조 원 수준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라인 건설비용은 1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20년 만에 4배 이상 올랐는데 새로 팹을 지을 때마다 가격은 더 뛰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장비 가격이 천정부지를 치솟고 있는 게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 과거나 현재나 투자 규모와는 상관 없이 장비의 수명은 최소 3년이면 끝나기 때문에 또 투자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팔아서 엄청난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해도, 그 대부분을 재투자에 쓰기 때문에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는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산업 과점화로 가격 변동 폭 줄어


1990년대 말, 일본과 미국, 유럽 지역 반도체 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하고, 사업을 통폐합한 이유는 결국 막대한 투자를 할 여력이 없고, 제품을 만들어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스템 반도체는 TSMC와 미국 인텔 등 소수의 기업이 과점하고, 후발업체의 진입은 사실상 차단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같은 시기에 수요 산업 또한 선두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21세기 들어 심화된 산업의 과점화는 반도체 사이클이 사라지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PC와 서버 등 IT 분야에 국한되었던 반도체 수요산업 범위가 확장된 것도 산업 생태계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스마트폰을 위시한 통신 분야와 함께 전장화로 진화한 자동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산업이 필요로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는 구형 설비를 활용해도 되기 때문에 반도체 라인의 수명을 늘리는 효과를 낳았다.

2020년대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클라우드 서비스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VR‧AR) 분야가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당장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코로나19로 공급 부족 사태, 신규 팹 건설 줄이어


그러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언택트에 따라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던 공급망이 단절되면서 산업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수요산업 축소가 지속될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 달리 1년여 만에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이 정상궤도로 올라서자, 제품 생산을 줄였던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 되었다. 수요‧공급 불일치로 인해 20년여 만에 반도체 싸이클이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도쿄 올림픽 전후에 벌어진 양상이다.

올해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상위 반도체 기업들은 사상 유례없는 팹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공사에 들어갔다.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해 생산라인 중단을 반복했던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공장을 확보해 자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공장들은 2022년부터 순차적으로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해에는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2023년이 되면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갑자기 열린 신 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들어 성장이 둔화하거나 수요가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럴 경우 ‘올림픽 기간에 호황, 월드컵 기간에 불황’이라는 반도체 사이클 법칙이 재현될 수 있다.

‘허수 주문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전문기관도 이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지난달 30일(미국 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8.5%로 예상했다. 앞서 WSTS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 전망치 18.4%를 4개월 만에 절반 이하로 낮춘 것이다. 내년 메모리반도체 예상 시장 규모도 기존 1907억 6900만 달러(약 227조 151억 원)에서 1716억8200만 달러(약 204조 3015억 원) 규모로 하향 조정했다.

메모리 반도체 성장률 조정의 영향으로 내년 전체 반도체 시장 예상 성장률 역시 기존 10.1%에서 8.8%로 축소했다. WSTS는 내년 전 세계 반도체 예상 매출액을 6014억 9천만 달러(약 715조 7천억 원) 규모로 예상했다.

반도체 업계는 WSTS의 전망이 보수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지만, 수요 둔화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특히, 고객의 주문량 가운데 ‘허수’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경기가 급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기업간거래(B2B) 제품이며, 수요산업의 주문이 수익을 좌우한다. 다른 산업과 마찬하지로 수요산업은 코로나19 이후 적기공급(JIT)이 어려워지자 평소보다 많은 주문을 했는데, 주문은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다, 지난주 주문받은 100만개 공급 계약이 오늘 깨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허수 주문 비율이 얼마나 될지를 되도록 정확히 예측해야 앞으로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이게 쉽지 않다. 내년에는 조금씩 (주문 취소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허수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선다면 반도체 산업은 2023년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