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 2020년 1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중어뢰-II 최초 양산사업 계획을 심의·의결했다. 국내 기술진이 자체 개발한 중어뢰 '범상어'를 본격 양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처럼 우리 정부와 해군은 최신예 신무기들을 개발하고 있지만, 시작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기술 부족에 노하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랜 시간 동안 수입해온 무기들을 운용하며 노하우를 쌓았고, 1990년 대 이후 차제 개발한 어뢰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Mk-44부터 SUT 중어뢰까지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군은 북한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무기개발에 착수해 현재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신무기들의 바탕이 됐다.
어뢰 역시 비슷했다. 시작은 미 해군이 우리 해군에 판매한 Mk-44 경어뢰부터였다.
Mk-44 경어뢰는 1950년대 미 해군이 새로운 대(對)잠수함 경어뢰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한 무기다. 1956년부터 운용을 시작했다.
우리 해군은 Mk-44어뢰를 베이스로 어뢰개발을 시작했다. 당초 우리 해군은 Mk-44어뢰가 아닌 Mk-37 중어뢰를 미 해군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MK-37 중어뢰는 당시 미 해군 핵잠들이 사용하던 주력 어뢰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Mk-44 어뢰를 기반으로 연구개발에 나서 1979년에서야 KT-75를 선보였다. KT-75는 무유도 직진어뢰로 '상어'라는 닉네임을 최초로 붙은 한국형 어뢰다.
하지만 KT-75를 비롯해 이후 개발된 KT-76어뢰까지는 개발만 진행되고 양산은 되지 못했다. 대신 미국이 우리 정부의 무기개발 의지를 확인하면서 공동개발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1981년 우리 군과 ADD는 미국 허니웰社와 함께 협약을 맺고 새로운 어뢰개발에 나서게 된다. 이후 1983년 Mk-44 경어뢰를 기반으로 한 대(對)잠수함용 경어뢰 K744를 개발했으며, 1986년부터는 양산에 나서기도 했다. K744에서 K는 한국(Korea), 7은 해군용 운용체제를, 44는 Mk-44를 의미한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우리 정부와 해군은 잠수함 도입에 나섰다. 장보고급 잠수함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장보고급 잠수함에서 사용할 잠수함무기체계가 없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장보고급이 사용할 중어뢰를 해외에서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현재 장보고급 잠사함들이 주력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SUT 중어뢰가 바로 그것이다.
SUT중어뢰는 533mm 크기에 무게만 1420kg에 달한다. 최대 28km까지 발사가 가능하며, 유선유도 방식도 능동/수동 유도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우리 해군 소속 장보고급 잠수함인 이천함이 1999년 괌에서 열린 훈련과정에서 미 해군의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호를 단 한방에 격침시켰던 무기가 바로 SUT 중어뢰다.
메이드인코리아 '백상어'의 등장
우리 해군은 1990년대까지 장보고급 잠수함을 도입하기에 앞서 돌고래급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에 돌고래급 잠수함에서 사용할 어뢰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돌고래급의 크기가 작아서 중형어뢰를 장착하기 어려웠고, 결국 경어뢰와 중어뢰의 중간 정도 크기의 어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애매한 사이즈의 어뢰가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중어뢰를 기본 무기로 사용하고 있어 이보다 작은 사이즈의 어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정부는 ADD를 통해 자체 개발에 나섰다. 앞서 미국 허니웰사와 개발했던 K744를 기반으로 중어뢰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초의 어뢰가 탄생했다. 바로 '백상어'다. 백상어를 개발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9번째 어뢰개발국이 됐다.
백상어는 수동 소나와 능동 소나를 모두 장착했으며, 디지털 유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름은 483mm에 길이 6m, 무게는 1100kg이다. 탄두중량이 높아 엄청난 폭발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백상어는 신뢰성에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실탄사격훈련에서 자기신관이 작동하지 않아 폭발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300억원이라는 작은 사업비로 개발에 나서다보니 충분한 시험평가를 거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향탐지 능동유도 방식을 주로 사용해서 기만체에 속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장점도 있었다. 대당 가격이 20억원이 넘는 독일제 SUT에 비해 생산단가가 10억원도 안돼 저렴하기 때문이다.
결국 ADD는 이후 차기 중어뢰개발사업을 통해 백상어의 후속모델 개발에 나섰고, 우리 잠수함전력의 주력 어뢰로 양산 중인 범상어의 토대가 됐다.
청상어와 홍상어
백상어 개발을 통해 자신감을 붙은 우리 정부와 해군은 본격적인 어뢰 개발에 나선다. 기존 Mk-44 어뢰를 대체할 신형 경어뢰 개발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경어뢰는 통상 수상함이나 대잠헬기, 초계기가 사용하는 무기체계다. 적 수상함을 공격하거나 적 잠수함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체계다.
ADD는 백상어 공개 전인 1995년 신형 경어뢰 '청상어' 개발에 나섰다. 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세계 7번째 경어뢰인 '청상어'를 2005년 공개했다.
청상어의 개발과정은 쉽지 않았다. 백상어 개발을 통해 얻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쏟아부었지만, 적은 예산과 촉박한 개발일정 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2001년 6월 진행된 청상어 발사 시험과정에서 시제품이 남해바다에 가라앉아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우애곡절 끝에 개발된 청상어는 훌룡한 성능으로 대한민국 명품 무기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청상어는 능동형 소나(수중 음파탐지장비 중 하나)를 장착했으며, 탄두의 파괴력이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DD가 개발한 청상어는 필리핀과 인도 등에 수출되기도 했다.
청상어의 개발은 대잠로켓 무기인 '홍상어'의 개발로 이어졌다. 홍상어는 수직발사기를 통해 발사되는 로켓형 미사일로 우리나라에서는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들과 세종대왕급 구축함에서 운용되고 있다.
대잠무기인 홍상어는 수직발사기에 발사된 후 정해진 곳까지 날아간다. 이후 정해진 곳에서 로켓이 분리되면서 상당부의 어뢰가 낙하산을 펼쳐 입수한 후 주변 적 잠수함을 찾아가는 무기체계다. 이런 구조의 무기체계로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다.
2010년 이후 양산이 시작된 홍상어는 2012년 7월 포항 인근 시험발사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총 4차례에 걸쳐 8발을 쐈는데 이중 5발만 명중하고 3발은 유실됐기 때문이다. 이에 한때 실전배치를 취소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ADD와 LIG넥스원이 보완에 나섰고, 2014년 이후에는 뛰어난 명중률을 자랑하고 있다.
백상어보다 무서운 범상어
우리 해군 주력 잠수함들의 메인무기로 낙점된 범상어는 백상어의 후속모델이다. 백상어는 앞서 밝힌 것처럼 신뢰성 문제로 인해 해군은 결국 장보고급 잠수함의 주력 무기로 독일제 SUT중어뢰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범상어의 실전배치가 마무리되면 SUT중어뢰의 자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범상어의 성능이 그만큼 압도적이란 의미다.
범상어는 LIG넥스원이 2012년부터 개발에 착수했으며, 2018년 6월 운용시험평가 이후, 지난 2020년부터 양산에 돌입한 상태다. 사이즈는 기존 중어뢰들과 동일하게 533mm이며, 사정거리와 폭발력이 더 강화됐다.
백상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유선유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범상어는 광섬유케이블을 사용하는데, 리튬배터리 기반의 추진체계를 통해 최대 50km까지 공격이 가능하다. 또한 55~60노트(knot·100~111km/h)까지 속도를 높일수도 있어 핵잠 공격도 가능하다.
범상어는 우리 해군의 손원일급(214급) 이상의 잠수함에서 사용되며, 1발당 가격은 30억원대로 알려졌다.
게임체인저 '초(超)공동어뢰'
범상어 양산에 나선 우리 정부와 군은 현재 어뢰무기류에 새로운 전환이 될 신무기 개발에 나선 상태다. 바로 '초공동어뢰'다.
초공동어뢰는 '초공동현상'을 이용해 물속에서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어뢰를 뜻한다. 초공동 현상은 물 속에서 기포로 작은 막을 만들어 물체를 덮으면 물의 마찰이 줄어들면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초공동 관련 기술은 이미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연구에 나선 바 있으며, 러시아(옛 소련)가 1990년대 개발을 완료해 '쉬크발(Shkval)'이란 이름으로 실전배치를 한 상태다. 쉬크발 어뢰는 수중에서 50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데, 이는 통상적인 어뢰 속도의 5배 이상이다.
초공동어뢰는 현재 해군 주도하에 방위사업청과 ADD, 관련 기업들이 나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속도가 부족하지만, 와이어를 연결한 상태에서 100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초공동유도체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우리 주변국 상황이다. 러시아는 이미 1990년대에 초공동어뢰에 대한 개발을 완료하고, '쉬크발'이란 이름으로 양산·배치가 완료된 상태다.
특히 쉬크발은 수출형모델도 있어 이미 중국이 보유해 전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쉬크발을 분해 후 재조립하는 독자개발에 나서 초공동잠수함 개발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우방국 중에서는 독일이 가장 빠른 속도로 개발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2005년 싱가포르 무기박람회에서 360km/h에서 유도제어가 가능한 초공동어뢰인 '바라쿠다'를 공개한 바 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됐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당한 진척이 있었을 것으로 방산업계는 보고 있다.
우리 해군 역시 2010년 이후 3단계에 걸쳐 개발을 진행 중이다. ADD는 이와 관련 2015년 ADEX(서울 항공우주 및 방위사업 전시회)에서 초공동어뢰 모형과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개발진척 상황이나 성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초공동 현상을 이용한 무기체계는 이미 반세기가 넘게 연구 중인 분야"라며 "개발이 완료돼 작전능력이 확보될 경우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