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매체는 현대중공업의 크레인은 장력 케이블, 균형추, 플랫폼을 기준으로 1만 톤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말뫼의 골리앗크레인이 단 돈 1달러에 한국으로 팔려 오기 이전까지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1500톤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무려 1만 톤 정도를 거뜬히 들어 올리는 크레인을 개발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1년도에는 9100톤의 적재량으로 시험 운행했다고 한다. 이는 승용차 6200여대 무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부 사용자들은 이를 '메가 건설'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다시금 세계 선박수주 1위를 거머쥐자 외신들은 의혹의 눈빛으로 한국의 조선 산업을 눈 여겨 봤을 것이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조선경쟁력을 가졌던 스웨덴과 한국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해봤을 것이다.
스웨덴의 얼룩진 조선 산업을 소환해 보자. 말뫼의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으로 팔아야만 했던 일에서부터 쿠쿰조선소를 독일로 이전했다가 다시 사들인 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한국 조선 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 전략에 참고가 될 것이다.
스웨덴은 외국인에게 "너 스웨덴 겨울 견뎌 봤어"라는 인사를 할 만큼 겨울을 두려워는 나라이다. 폭설로 자동차 속에 갇힌 채 두 달간 물만 마시고 버텼다는 뉴스가 TV에 방영되고, 1년 중, 4개월을 제외한 날들이 모두 겨울이라고 하니 지독하게 추운가 보다. 이렇게 추운 나라기 조선 산업 분야의 1위를 차지했었으니 뭔가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암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스웨덴 남녀선수들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잘 생겼다. 스웨덴 패션의 아이콘은 금발이다. 하얀 피부와 은색에 가까운 금발 머리를 뽐낸다. 이들의 빼어난 미모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1988년도에 화제를 몰고 온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스웨덴 주변을 모티브로 했다. 수 십 년이 흘렀지만 여주인공 '피아 데 마르크'의 미모는 아직도 뇌리 속에 남아 있다. 17세 발레리나와 육군 중위의 비극적인 실제 사랑이야기의 명장면은 마지막 부분이다. 불륜의 사랑은 죽음으로 끝난다.
"방법은 하나예요."
"말하지 마."
먹은 게 없어 힘들어 하는 '엘비라 마디간'은 남자와 깊은 포옹을 한다. 남자는 여자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눈다. 여자는 방아쇠를 당기라고 재촉하지만 차마 쏘지 못한다. 그때,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이 흐르고,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나비를 쫓아간다. 그녀의 손에 나비가 붙잡히고 다시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순간 화면은 정지된다. 이어서 두발의 총성이 울린다.
'사랑과 빵'이라는 현실 앞에 좌절하는 영화다. 스웨덴 영화의 배경에는 바닷가 도시 '말뫼'가 자주 등장한다. 그곳에는 유럽 최강의 조선소 '코쿰스 조선소'가 있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갠트리 크레인이 유럽 조선경기의 번영기를 상징했다.
스웨덴의 '코쿰스 조선소'는 약 100여 년 전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로 LNG선을 건조하는 등 북유럽 최대의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했다. 이 회사가 건조한 선박은 세계 해운시장을 휘젓고 다녔지만 1990년대 초반 도산하면서 가장 큰 '갠트리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길 처지로 전락했다.
'갠트리 크레인'은 1973년부터 2년간 건조되었다. 자체 총 중량은 7560톤이며, 폭은 165m에 이른다. 높이는 45층 빌딩과 맞먹는 138m이다. 상판의 폭은 13m로 버스 4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다. 이 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무려 1500톤이다. 세계 최고였다. 레일 폭은 175m이고 말뫼에서 사용될 당시의 레일 길이는 710m이다. 말 그대로 골리앗이다.
말뫼에서 '갠트리(골리앗)크레인'은 약 75척의 선박을 건조했다. 75척 중 40척은 유조선, 나머지는 특수 목적 선박이었다. 마지막으로 건조된 2척은 크루즈 선박이다. 이 크레인은 1997년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를 잇는 1845m의 외레순(Oresund Bridge) 대교(호이티프, 스칸스카社 건설)의 교각을 마지막으로 들어 올린 후 일거리가 없어 빈둥빈둥 놀았다.
이 크레인은 '1달러'에 매각되어 화제를 모았다. 스웨덴에서 조선 산업이 사양화 되자 이 크레인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됐다. 매각을 하려해도 원매자가 없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Burmeister & Wain사와 계약을 체결했으나 매각 이전에 회사가 파산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구매자로 선정된 것이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공짜로 이 크레인을 가져가기로 협상을 마쳤다. 법률상 효력을 위해 '1달러짜리 계약서'를 작성했다. 한국의 고 정주영회장이 이끌어낸 강단 있는 비즈니스였다. 당시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이 무모한 인수를 했다고 눈과 귀를 현대중공업에 바짝 들이 댔다.
현대중공업은 이 크레인을 해체, 선적, 설치, 개조, 시운전 등에 총 220억 원을 들였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였다. 현대중공업은 코쿰스 조선소에서 1개월에 걸쳐 레그(지지대) 두 개와 상판을 절단한 뒤 2개월간에 걸쳐 울산만 해양공장으로 이 크레인을 옮겨왔다.
이후 6개월에 걸쳐 재조립된 이 크레인은 2003년 하반기부터 실전에 투입돼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육상건조 공법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갠트리 크레인'이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지난 100여 년 간 군림했던 세계 조선 산업의 중심이 유럽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르면서 한국인들은 다시 더 큰 크레인과 더 합리적이고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크레인들을 속속 개발했다.
2002년 9월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MalmӦ)에서 골리앗 갠트리 크레인을 한국행 선박에 선적하던 날, 말뫼부두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을 내보냈고, 신문들은 '말뫼가 울었다'는 제목을 달았다.
스웨덴은 눈물과 인연이 많다. 추워서 울고, 사랑이야기에 울고, 스웨덴 대표 산업이 흔들려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 보면 수년 전 울산에서도 조선 산업이 형편없이 나둥글었던 시절과 닮았다. 다만 한국인, 현대중공업의 산업 전사들은 눈물대신 어금니를 깨물었을 것이다.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들렸다. 부활의 나팔은 분 것은 불과 1.2년 전이다.
스웨덴의 코쿰스 조선소는 2014년 7월 22일 최종적으로 Saab로 넘어갔다. 그동안 독일 TKMS에 존속 됐으나 스웨덴이 코쿰스를 다시 인수하지 않으면 잠수함 건조기술을 찾지 못한다는 판단아래 다시 인수했다. 세계적으로 성장 동력과 미래 먹거리는 결국 국방(Depence)산업과 관련한 전투함이나 특수선박 기술이므로 코쿰스를 다시 가져온 것이다.
세계 조선 산업은 세월을 더하면서 최강자의 자리바꿈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잡았다. 물론 지난 2~3년간 한국의 조선 산업은 말뫼의 눈물에 버금 갈 만큼 어려운 곡절을 겪었지만 다시 조선 산업의 최강자로 돌아왔다.
선박건조 수주량 세계 1위 자리를 쟁탈한 한국의 조선사들은 일감확보 보다는 차츰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의 건조에 매진하고 있다. 역사의 굴레에 올라탔던 말뫼의 골리앗 크레인은 그 파워를 더 크게 증대시켰다.
앞으로도 한국의 조선 산업은 승승장구 할 것인가에 대한 단정은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조선 산업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 인건비와 원자재의 인상, 그리고 관련 엔지니어들이 줄어든다는 점은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그러나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철강 산업과 조선 산업 그리고 해운 산업은 하나의 덩어리로 같이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서로 전후방 지원을 해준다는 점이다. IT산업이 미래를 책임지는 산업으로 등장했지만 국가기간산업이 후퇴한다면 한국의 경제는 장담할 수 없다.
수출로 경제를 뒷받침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조선, 해운, 철강 산업이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외신들이 한국의 조선 산업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남다른 기술개발이 선행됐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속뜻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