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글로벌 3대 사모펀드운용사 중 하나인 칼라일이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향상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전무가들 사이에서 현대글로비스가 향후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발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칼라일 투자팀의 방한 목적은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향상과 신사업 강화를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측은 “자동차사업에 집중된 현대글로비스의 사업구조를 조정하고, 새로운 사업을 추가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룹경영진과 만나 비전을 듣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고차 등 유통판매 사업부문은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사업 진출을 결정하면서 미래가 기대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재 국내의 주요 중고차업체들로부터 차량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해외로 수출하는 등 중고차유통사업 전반을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지난 3월 중고차 매매업(소매)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해당사업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 영업 중인 수입차업체들처럼 인증중고차 시장을 중점적으로 키울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현대글로비스가 주요 중고차 매출입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중고차를 사들인 후, 현대차와 기아가 인증중고차 사업에 나서는 방식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주요 사업 중 규모가 가장 적은 자동차선박운송 해운사업은 성장세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세계 1위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의 해상운송 사업을 맡게 되면서 현대차그룹의 '전용 운반업체'가 아닌 글로벌 해운물류업체로 거듭나고 있다.
실제 현대글로비스는 테슬라와 올해에만 5018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중국에서 생산된 테슬라 전기차를 유럽으로 운송하고 있다. 자동차 해상 물동량 순위에서 전 세계 2위까지 올라서며 1위인 NYK(니폰유센)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글로비스는 향후 7척의 신형 운반선을 건조하거나 용선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중심이던 포트폴리오에도 큰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달 12일 호주 최대 LNG 생산업체인 우드사이드와 최대 15년의 장기계약을 맺고 LNG 운송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현대글로비스는 LNG운반선을 인도받는 2024년 하반기부터 호주에서 생산된 LNG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로 운송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원자재 중개업체 중 하나인 '트라피구라'와 2024년부터 암모니아 및 LPG 운송 계약도 맺었다.
신사업에도 나선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센터 운영을 위한 '스마트물류솔루션'사업에 진출했다. '스마트물류솔루션' 사업은 현대글로비스가 물류사업을 통해 확보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 관련 로보틱스 등을 융합해 고객사 물류센터에 자동화 구조 및 설비, 시스템 등을 개발해주는 솔루션 제공사업이다.
이를 위해 현대글로비스는 글로벌 물류설비 제조업체인 '스위스로그(Swisslog)'와 자동화 설비에 대한 국내 판권을 독점 계약했다. 고객사에 스위스로그의 자동화설비를 구축해주면서 자동화설비 제어 솔루션(WCS)을 고도화해 물류센터의 효율을 높여주는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게 현대글로비스의 설명이다. 회사 측은 3년 내 국내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글로비스가 공격적으로 사업목표를 확장하면서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현대글로비스 지분(19.99%)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전부터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려 했다. 지난 2018년 순환출자 해소 및 대주주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출자구조 개편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했을 당시 현대모비스를 분할하면서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그룹의 지배회사 역할을 맡고 있던 현대모비스를 투자사업부문(존속)과 AS사업부(신설)로 인적분할한 후, AS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기아와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정 회장에게 매각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기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끊어지고, 대신 정 회장 일가→현대모비스(존속법인)→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사업구조 개편안'은 현대모비스의 AS사업부문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지적과 함께 노조의 반대 등으로 결국 취소됐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지분을 매입했던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한 차례 실패했던 당시 개편안이 재거론되는 이유는 현대글로비스의 달라진 위상 덕분이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해 제값에 현대모비스를 분할 후 합병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 회장 보유 지분이 가장 높은 만큼 현대글로비스의 덩치를 키워 현대모비스를 제값에 흡수한다면 과거와 같은 논란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금융투자업계도 재계의 이 같은 해석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가 기존 사업부문을 넘어 LNG운송업과 솔루션제공업 등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은 기업규모와 가치를 더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면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매입한 칼라일 역시 향후 더 많은 이익을 기대하고 관련사업에 투지팀을 급파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칼라일은 지난 1월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약 6113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정 회장의 지분 3.29%와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 6.71%를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홀딩스를 통해 전격 매입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 부자가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총수일가의 보유지분을 축소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30일 발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기업에는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