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들은 지난 5월 24일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대규모 중장기 투자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 두 달 만에 경영상황이 급변하면서 재계는 투자집행에 신중한 모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발생한 공급망 불안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고, 인플레이션(물가급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진 것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당초 예정됐던 중장기 투자계획을 원점부터 신중하게 재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예정됐던 투자집행 시기를 놓고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십 조 단위의 투자계획인 만큼 계획설립 이전부터 여러 변수를 고려했지만,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투자결정을 섣불리 내리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곳은 SK그룹이다. SK그룹의 주력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19일 예정됐던 청주 반도체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공장은 오는 2025년부터 가동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투자보류 결정으로 착공이 연기될 것이란 관측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 13일 제주포럼에 참석해 "작년 세웠던 투자계획은 당연히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서 "원재료 부분이 너무 많이 올라 원래 투자대로 하기에는 계획이 잘 안 맞는다"고 말했다. 경영상황에 따라 중장기 투자계획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LG그룹 역시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중장기 투자계획의 집행을 경제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1조7000억원 규모 애리조나 배터리 공장 투자계획 역시 재검토에 들어가는 등 신중한 모습이다.
포스코그룹과 한화그룹, 롯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당초 밝혔던 중장기 투자계획을 그대로 집행하기보다 대외변수들을 살펴보면서 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중장기 투자계획에 대한 변경 논의가 진행 중이지는 않지만,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기보다 ‘관망’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경영상황 악화에도 예정된 중장기 투자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키고 있는 곳도 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은 경영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된 중장기 투자계획을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장기 투자계획인 만큼 여러 변수들이 투자계획 수립 단계부터 반영됐으며, 투자액 중 상당부분이 국내에 투입될 예정인 만큼 중장기 투자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그룹 차원에서 9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중 63조원을 국내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측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공급망 불안 등의 불안요소가 여전히 높지만,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중장기 투자계획인 만큼 예정된 시기에 맞춰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두 그룹의 해외 투자 역시 예정대로 추진 중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이후 대규모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신규 설립을 확정했으며,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 서배너에 55억달러(약 7조원) 규모의 전기차 전용공장 신규 설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GS그룹과 두산그룹, 신세계그룹 역시 지난 5월 공개한 중장기 투자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그룹사 한 관계자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할 당시에도 이미 고물가와 고환율 상황이었다"면서 "당시부터 현재의 경영상황이 악화된 것은 맞지만, 많은 고민 끝에 중장기 투자계획을 공개한 만큼 현재의 경영상황이 투자계획을 수정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