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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귀 막은 국민연금 기금위,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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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귀 막은 국민연금 기금위,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바꿔야

최고 의사결정기구 기금위 20명 중 사용자 대표 3명 불과
재정기여도 90% 경영계 의견, 정부‧시민단체 위원에 막혀
민간 전문가 중심 ‘수익성’에 주력 해외 연기금 사례 따라야
지난 9월 28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제6차 회의에 참석한 기금위 위원들이 위원장인 권덕철 보건복지부 짱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9월 28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제6차 회의에 참석한 기금위 위원들이 위원장인 권덕철 보건복지부 짱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운용 자산 규모 915조원에 달하는 ‘큰손’ 국민연금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 재정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기업이 기금운용에 있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편향적인 지배구조(거버넌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1일 경영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세계 주요 공적 연기금 중 유일하게 정부가 직접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운영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가 그렇다. 20명으로 이뤄진 기금위 위원 중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당연직 정부위원 5인(기획재정부 제1차관‧농림축산식품부 차관‧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고용노동부 차관‧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관계 전문가 자격의 국책 연구기관장 2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한국개발연구원장) 등 총 8명이 정부를 대표하거나 정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다. 여기에 근로자를 대표하는 3명이 노동계 추천 인사들이며, 농어업인 단체 추천은 2명, 농업인 외 자영자 단체 추천 인사 2명, 소비자단체 및 시민단체 추천 인사도 2명이다. 경영계를 대변하는 사용자 대표 위원은 단 3명뿐이다.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기금위 위원 대부분이 기업에 반하는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게 경영계의 판단이다.

주요 국가 공적 연기금의 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어 국민연금과 대비된다.
운용 자산이 2038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의 경영위원회는 GPIF 이사장과 9명의 경영위원으로 구성된다. 9명 중 7명은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이며, 2명은 노사단체로부터 각 1명씩 추천받은 인사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의 의사결정기구인 노르웨이은행 이사회는 총재 1명, 부총재 2명, 민간 전문가 6명 등으로 구성되며, 캐나다 국민연금(CPP)의 CPPIB 이사회는 금융기관 최고경영자 6명, 일반기업 최고경영자 5명, 투자전문가 1명 등 총 12명으로 이뤄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의 CalPERS 이사회도 선출직 대표 6명, 주지사 임명 2명, 주의회 임원 1명, 당연직 지사 4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이들 연기금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있으며, 의장도 대부분 민간 경영계 인사들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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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글로벌이코노믹
반면 국민연금 기금위 위원 구성은 ‘재정기여도’와 관계없이 이뤄져 대표성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공단 운영비 지원(매년 100억원)과 크레딧 지원 외에는 재정기여도가 거의 없는데도 기금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특히, 가입자를 대표하는 민간 위원의 경우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기여도 비중이 전자는 약 90%, 후자는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위원을 동수로 위촉해 가입자 전체의 의사가 왜곡되어 반영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영계는 사용자의 재정기여도가 지역가입자보다 4.4배나 높지만, 기금위에 참여하는 사용자 대표는 3명인 반면, 지역가입자 대표는 6명이 참여해 그 자체로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일부 지역가입자 대표의 경우 정부가 특정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에 위원 추천 권한을 부여해 해당 위원이 전체 지역가입자의 이해관계를 중립적으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경영계의 설명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금위는 국민연금법에 기금운용의 유일 원칙을 ‘수익성 추구’로 정해 놓았지만, 실제 운용정책이나 기준을 마련할 때는 공익성이라는 당초 의도와 맞지 않는 기준을 잣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이러한 움직임이 국민연금 운영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기금위는 수익성 원칙과 함께 ‘사회 정책적 목표 달성’이라는 목표를 기금운용 원칙에 개입시켜 운용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기금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전용될 위험성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낙후지역 발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육성, 지역 내 고용 창출 등 정책 목표를 기금운용에 반영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경영계는 이러면 수익률이 낮아 연기금 투입의 실익이 없고, 오히려 손실만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과거 사례를 들며 반대했으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경영계는 기금위 자체가 정부 등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구성된 결과, 정권에 따라 기금운용 구조가 흔들려 연기금의 독립적인 투자 운용을 저해하고 의사 설정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금위에서 심의‧의결해야 할 사항은 기금운용지침, 자산운용 관련 정책, 성과평가 등 대단히 전문적인 사안이지만, 현재의 왜곡된 기금위는 의사결정의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경영계 관계자는 “기금위 산하에 전문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전문위원회 의견이 기금위에서 비중 있게 반영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최종적 의사결정 단계인 기금위의 전문성 부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기금위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정부와 가입자대표 등 이해관계자 중심에서 기금위 위원 전원을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해 세계 주요 공적 연기금과 같이 기금운용의 정치적 독립성 및 전문성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적‧안정적 수익률 제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