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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 스토리] 과자처럼 찍어낸 리버티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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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 스토리] 과자처럼 찍어낸 리버티 선박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U보트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리버티 선박.이미지 확대보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U보트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리버티 선박.
2차 세계대전에서는 역사를 뒤바꾼 선박이 등장한다. 연합군의 리버티 선박과 독일 잠수함 U보트가 그 주인공이다. U보트는 미국 상선을 격침시키는 ‘물속의 귀신’이었다. 미국에서 군수물자를 잔뜩 싣고 유럽으로 향하는 상선들을 무자비하게 물속에 쳐박았다. 연합군은 U보트의 어뢰를 피하지 못한다면 패전할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였다.

고심 끝에 연합군은 엉뚱한 발상을 한다. 미련한 방법이었지만, 독일의 U유보트가 파괴하는 미국의 화물선보다 더 많은 화물선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바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전시 표준선이다.
‘리버티선’으로 명명된 이 선박은 미국 핸리 카이저의 아이디어였다. ‘리버티선’은 카이저의 4개 조선소를 포함한 미국 6개 조선사에서 2,700여척이나 만들어졌다.

1만920톤의 화물을 싣고 시속 11노트로 1만7000해리를 갈 수 있는 이 배(표준선)는 1척당 2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다. 배 한 척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일이었고 건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8시간 반 만에 한 척을 완성시켰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리버티 선박을 ‘과자처럼 찍어 낸다’고 비아냥댔다. 만약 미국의 조선소들이 대량의 선박건조를 소화하지 못했다면 2차 세계대전의 승전고는 독일의 몫으로 돌아 갈 뻔 했다. 당시는 국가의 기반을 구축하는 철강 산업이 번성하지 못했다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던 격동의 시기였다.

이 리버티선박은 한국인들과도 인연이 깊다. 2차 대전을 끝낸 미국은 리버티 선박이 남아돌자 이를 한국전쟁에도 사용했다. 그 유명한 함남철수에서 피난민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떠났던 선박도 리버티 선박이다. 그리고 월남전쟁에서도 리버티 선박이 사용됐다고 한다.

리버티 선박과 같은 철선의 원자재로 사용된 후판 제조는 기술력이 높아야 가능한 일이어서 한국에서는 1972년에 처음 만들었다. 최초의 후판 생산 기업은 공교롭게도 포스코가 아니라 동국제강이다. 1971년 2월에 동국제강이 가장 먼저 선박용 중후판을 생산했다. 연산 15만 톤 규모의 후판 공장은 매년 설비 합리화를 거쳐 1998년도에 공장을 이전을 위한 폐쇄에 이르기까지 연산 30만 톤을 생산했다. 동국제강은 이 후판공장으로 많은 수익을 거두고 인천공장의 확장과 포항제강소를 새로 구축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포스코는 1972년도에 포항제철소의 완공 이전에 후판공장을 완공했다. 상공정인 제선공장과 제강공장이 완공되면 바로 완제품까지 일사분란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선박의 안전을 위해 선박 바디 부문에 두 겹의 철판을 구성해야 한다. 더하여 기술력도 다양화되어 한편은 두껍고 다른 한편은 얇은 철판을 동시에 제조하기도 한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