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등에 주로 활용됐던 기존 전력반도체 대비 차세대 전력반도체는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활용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전력반도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다.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에 따라 덩달아 주목받는 것이 바로 전력반도체다. 특히 전기차에 사용되고 있는 차세대 전력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최근 DS(반도체) 사업부문에 '전력반도체 TF'를 신설하고 가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전력반도체 1위 기업인 독일의 인피니언으로부터 전력반도체 생산물량을 수주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지난해부터 인피니언의 전력반도체 중 모스펫(MOSFET·금속산화물반도체) 제품을 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국내 유일의 웨이퍼 생산업체인 SK실트론을 통해 전력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SK실트론은 최근 6억4000만 달러(약 8000억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공개했는데, 오는 2025년까지 차세대 전력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SiC(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의 생산량을 지금의 17배로 늘릴 계획이다. 또한 2024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8인치 SiC 웨이퍼를 연구개발 중이다.
DDI(디스플레이 구동칩) 명가로 잘 알려진 LX세미콘 역시 차세대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21년 말 LG이노텍에서 SiC 전력반도체 소자 설비와 특허 자산 등을 사들이며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 진출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어 지난 2021년에는 LG화학에서 일본 방열소재업체인 FJ머티리얼즈의 지분(29.98%)도 사들인 후, 지난해 '방열기판' 공장을 완공하고 자체 생산에 들어갔다. 방열기판은 전력반도체의 수명과 안정성에 큰 영향을 주는 핵심 소재다.
DB그룹은 29일 진행되는 DB하이텍의 물적 분할을 통해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할 계획이다. DB하이텍은 그동안 브랜드사업부를 통해 LCD 중심의 DDI 사업에 집중해왔다. 이에 이번 물적 분할을 통해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분리한 후, 팹리스 사업부 주도 아래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DB하이텍의 전력반도체 고객사는 현재 240여 개사 정도이며, 신규제품 개발 건수도 연간 6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K·LX·DB 등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기존 사업을 통해 확보한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전력반도체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면, 현대차·한화 등 제조업 중심 기업들은 특유의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을 준비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가 공동으로 지난 2020년 그룹 차원에서 SiC 개발에 나선 데 이어 제네시스 전기차에 자체 개발한 SiC 전력반도체를 탑재하기도 했다.
한화그룹도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11월 한화테크윈 시스템온칩(SoC)팀을 물적 분할해 설립한 비전넥스트가 사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전넥스트는 반도체설계업체로 한화테크윈의 CCTV에 사용되는 시스템반도체를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칩 설계 전문가로 평가받는 우정호 전 LG전자 상무가 대표로 선임된 점이 주목된다. 우 대표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퀄컴, LG전자에서 일하며 시스템반도체 설계 등을 담당한 반도체 엔지니어다.
관련 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이 질화갈륨(GaN)을 활용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GaN은 Si 대비 3배 이상 높은 전압을 견딜 수 있으며, 최대 작동온도도 800℃에 달할 만큼 뛰어난 내구성이 장점이다. 고출력을 요구하는 방산 제품에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두산테스나를 통해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선두 기업으로 떠오른 두산그룹과 화학결합물을 통한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LG그룹(LG화학) 역시 전력반도체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차세대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가 아직은 작지만, 성장세가 높고, 전기차 및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주요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보유한 중소·중견 전력반도체 생산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