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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강타한 유럽…에어컨 시장 확대 '적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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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강타한 유럽…에어컨 시장 확대 '적기' 될까

유럽 한낮 온도 40도 돌파… 가정내 에어컨 보급률은 10% 미만
유럽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부터 5위까지 국내 업체 없어

폭염에 힘들어하는 유럽 관광객들. 물을 부어 열을 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폭염에 힘들어하는 유럽 관광객들. 물을 부어 열을 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구 온난화에 세계 각국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유럽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이 낮아 더위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지적받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의 유럽 에어컨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 에어컨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입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유럽 에어컨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다이킨으로 로버트보쉬가 2위, 캐리어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5위까지 한국 기업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유럽 내 이렇다 할 생산기지가 없다는 점만 봐도 유럽 에어컨 시장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LG전자는 △중국 △한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에어컨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중국 △한국 △태국 △인도 등에 에어컨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에어컨과 동일한 원리로 냉난방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히트펌프를 내세워 B2B(기업간 거래)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삼성전자도 히트펌프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 내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이 현저히 낮은 까닭에 선택과 집중을 택한 전략으로 분석되지만 폭염이 강타하면서 에어컨 시장 상황이 변모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남자가 폭염으로 인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 근처에 서서 전화기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남자가 폭염으로 인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 근처에 서서 전화기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유럽 내 가전시장에서 에어컨 판매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탈리아 전역에 5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가전제품 소매업체 '유니유로'는 지난달 21일까지 에어컨 제품 판매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스페인에서도 에어컨 판매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스페인의 가장 큰 백화점 체인 중 하나인 '엘코르테잉글레스'는 7월 중순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더 많은 제품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유럽 내 에어컨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슈퍼엘니뇨로 지구 곳곳을 폭염이 강타했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는 최고기온이 지난달 29일 연속 43도를 넘어섰고 유럽은 한낮 온도가 40도를 넘나들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에어컨 보급률이다. USA팩트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91%에 달하는 반면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현저하게 낮다. 2022년 기준 전체 가정에서 에어컨이 보급된 비중은 △독일 3% △프랑스 5% △영국 5% 미만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업계에서는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이 10% 미만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LG전자가 지난 3월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 냉난방 공조 전시회인 ‘ISH 2023’에서 선보인 고효율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 서마브이(Therma V).이미지 확대보기
LG전자가 지난 3월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 냉난방 공조 전시회인 ‘ISH 2023’에서 선보인 고효율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 서마브이(Therma V).
유럽의 가정 내 낮은 에어컨 보급률은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국내 에어컨 업체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유럽 에어컨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이란 전망은 국내 가전업체들의 유럽 에어컨 시장 공략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유럽 에어컨 시장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5.7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올해 시작된 슈퍼엘니뇨가 일회성이 아니라 통상 몇 년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더위는 매년 계속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지구 온난화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현지 식당이나 숙박업체를 운영하는 현지인들이, 관광객들이 폭염에 음식점이나 숙박업체를 고를 때 최우선 순위로 맛이나 서비스보다 에어컨 설치 여부를 물어본다고 말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점유율 확대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기후가 건조한 탓에 유럽 사람들은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 때문에 가정 내 에어컨 보급률이 타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은 에어컨 사용을 적극적으로 반기지 않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한국 가전업체들이 유럽 내 가정 에어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난 2021년 프랑스 설문조사업체 '오피니언웨이'가 프랑스 성인 10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에너지 비용과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에어컨을 구입할 생각이 없다고 조사됐다. 친환경·고효율 제품을 내세운다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일부 유럽인들이 여름에 에어컨이 필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 프랑스 폭염으로 약 1만5000명이 사망한 이후 요양원과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시설에 에어컨이 도입되고 있다. 유럽 에어컨업계 관계자는 "에어컨은 어떤 식으로든 유럽의 미래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히트펌프 등을 이용한 고효율 제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계 관계자도 "유럽 에어컨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ngy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