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외하기 위한 각종 법‧제도를 시행한지 1년을 넘어서면서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물론 철강 부문까지 미국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현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강업체인 US스틸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아르셀로미탈이 US스틸 인수 제안을 위해 투자 은행가들과 논의하고 있으며 이를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소식통은 실제 입찰에 참여할지에 대해 확신은 없다고 전했다.
3파전이 이뤄지면 세계 철강산업 인수‧합병(M&A)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된다.
먼저, 아르셀로미탈은 인도와 브라질과 같은 성장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보유하고 있던 미국 내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마탈 USA를 지난 2020년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에 14억 달러에 매각하고 현지에서 철수했다. 만약 US스틸을 인수한다면 3년여 만에 미국에 재진출 하는 셈이다.
세계철강협회(WSA) 통게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아르셀로미탈의 연간 조강생산량은 6889만t이었며, US스틸은 1449만t으로, 전 세계 27위였다. 두 회삭가 합병해 조강생산량을 단순 합산하면 8338만t으로, 1위 중국의 바오우그룹(1억3184만t)과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가장 먼저 US스틸에 인수를 제안한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는 1680만t으로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내 기준으로 두 회사는 뉴코(2060만t, 세계 16위)에 이어 2, 3위에 올라있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US스틸을 인수하면 3129만t으로 인도 타타스틸(3018만t)을 누루고 세계 10위로 올라선다. 특히, 미국내 유일한 고로(용광로) 철강사로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에스마크는 철강 가공‧유통업체인데 US스틸을 인수하면 고로 제철소에서 열연강판 등을 구매해 냉연 등 강판을 만드는 ‘하공정’ 업체가 쇳물을 뽑아 직접 열연강판 등을 생산하는 ‘상공정’ 제철소를 인수하는 드문 사례를 만들 수 있다.
세 업체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지만, 가장 매력적인 점은 US스틸이 미국내 자동차 강판 생산량이 2위라는 것이다. 자동차 강판은 수많은 철강제품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기술이 적용되고 품질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에 ‘철강산업의 꽃’이라고 불린다. 자동차 강판을 만들 수 있느냐로 철강기업의 기술 수준을 나누기도 한다.
1위인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와 합치면 현지 자동차 강판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아르셀로미탈은 2006년 출범 당시 연간 조강생산량이 1억t을 넘는 초대형 공룡이었으나 범용 철강제품 생산‧판매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자동차 강판 생산 비중은 매우 낮았다. 신일본제출(현 일본제철)이나 포스코에 대해 적대적 M&A를 노렸던 것도 자동차 강판 개발 기술을 얻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일본제철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나 US스틸을 인수하면, 미국내 자동차 강판 시장 점유율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에스마크는 자사의 강점인 넓은 유통망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철강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수 있고, 특히 철강재를 직접 생산‧판매하기 때문에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스마크의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책임자(CEO)인 제임스 부샤드(James Bouchard)는 지난 15알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US스틸을 인수하기 위한 78억달러의 현금이 은행 계좌에 있다”고 밝히는 등 인수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내비쳤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는 13일 US스틸에 주당 35달러 기준 현금 및 주식을 통한 73억달러(약 9조7660억원)에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다음날 에스마크는 주당 35달러 기준으로 78억 달러(10조 4410억 원)의 현금 인수를 제시했다.
양 측의 차이는 ‘현금’이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자체 주식을 통화로 사용해 절반을 지불하고 나머지 절반은 은행에서 차입해 지불한다고 한 반면, 에스마크는 전액을 자체 현금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부샤드 CEO의 발언은 이러한 제안을 뒷받침한다.
그러며너 “내 은행 계좌에 100억 달러의 현금이 있다. 에스마크는 자체적인 부채가 없다”면서.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국제은행’으로부터 US스틸 인수에 대한 조언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US스틸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의 제안은 거부한 반면 에스마크와는 “전략적인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수용 여지를 남겼다.
US스틸 인수전으로 시작된 미국 철강산업 구조개편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체의 현지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불안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국내 철강업체는 이미 미국 중앙정부로부터 반덤핑, 상계관세 등 통상 규제를 받고 있으며, 쿼터제까지 적용받아 일정 수량 이상의 수출 철강재는 고율와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기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완성품 생산업체들이 미국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이들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철강재를 국내에서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가공‧생산하고 있는데, 미국 철강업체들의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뒤쳐저 있는 고부가가치 철강재 제품을 제외하면, 가격 경쟁력이 높고 품질도 일정 수준 이상인 미국산 철강재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 실익이 높다. 이럴 경우 한국산 철강재의 미국 수출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