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선입견이었다. 실제는 격식 갖추고 타야하는 프리미엄 차였다는 걸 말이다. 이번 시승을 통해 이미지가 확실히 달라졌다. 부드럽게 치고 나가면서도 단단하고 때에 따라 말캉말캉한 하체 느낌과 실내 정숙성까지 갖췄는데, 프리미엄 독일 3사의 차들이 크게 부럽지 않다.
여기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일단 시승차는 ‘4xe’ 배지를 달고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파워트레인을 탑재했다. 얼핏 전시에 무슨 충전이야 하겠지만, 전쟁이 나면 시가전이 십중팔구일 터다. 충전도 가능하고 일단 한 번 충전이 돼 있다면 일반 내연기관 모델보다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 된다. 진격을 위해서라도 퇴각을 위해서라도 주행가능 거리는 길면 길수록 좋다. 참고로 파워트레인은 각각 63마력, 145마력을 내는 2개의 전기모터와 400V 리튬이온 배터리팩과 2.0ℓ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272마력), 그리고 쿼드라 트랙II 지프의 사륜구동 기술이 접목된 8단 자동변속기로 구성됐다.
옵션으로 적용된 쿼드라 리어 에어 서스펜션은 도심 주행에서도 험로에서도 꽤 괜찮은 승차감을 제공한다. 기본적으로는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탑재된다. 이점이 프리미엄 차로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주행모드를 바꾸면 차체가 오르락내리락 할 때 높낮이가 실제 느껴지기도 하는데, 오프로드를 달리기 전이라면 은근히 기분까지 들썩거릴 정도다. 뒷좌석 승차감도 꽤 훌륭했다. 장군의 의전용 차로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다. 노면이 거칠어도 깊이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저절로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카리스마 있는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더 커진 세븐 슬롯 그릴은 샤크 노즈를 연상케하고 그 어느 때보다 압도적이다. 여차하면 장갑차로 보일 수 있다. 보닛이 좀 더 높아진 것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역할이 컸다. 만약 전투 위장 데칼을 입힌다면 측면 보디와 후면 역시 우람한 체격을 자랑할 거 같다는 생각이다. 최대 트렁크 공간은 2000ℓ에 달한다. 차박 정도가 아니라 기관포도 장착할 기세다. 풀사이즈 SUV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내는 셈.
그랜드 체로키 라인업은 일반형 그랜드 체로키, 휠베이스를 늘린 그랜드 체로키 L이 있다. 후자는 3열 시트가 있는 진정한 패밀리카다. 이들은 PHEV보다는 조금 더 저렴하고 도심 사용자에게 조금 더 실용적인 성격이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적합한 충분한 편의·안전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차선 유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후방 추돌 경고 등이 여기 포함된다. 하지만, 승차감은 확실히 이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 지난 겨울 시승회에서 체로키 L을 타본 적이 있는데, 사실 이 둘은 파워트레인을 제외하고는 기술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무게감이 PHEV 쪽이 더 크다는 게 더 좋은 승차감을 느끼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