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카를로스 델 토로(Carlos Del Toro) 미국 해군성 장관이 지난 26일 신원상 국방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언급한 데 이어 27일에는 군함 건조 방산업체인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차례로 방문하는 등 한‧미 해군 방위산업 협력 고도화 방안을 타진했다.
양국간 군함 교류는 20여년 전부터 조용히 추진되어 왔다. 한‧미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의 군함 설계기술과 한국의 대규모 조선 인프라 및 건조 약략을 융합해 군함 시장 진출 확대를 모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노력이 실제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美 본토 MRO 물량 포화…한국에 일부 이전 검토
조선업계에 따르면, 델 토로 장관은 27일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 이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했다.
울산에서는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델 토로 장관과 만나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사업 현황과 기술력을 직접 소개하고,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델 토로 장관은 세계 1위 위용을 자랑하는 HD현대중공업 조선 야드를 둘러본 후 함정을 건조하는 특수선 야드를 방문했다. 특수선 야드에서 올해 인도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인 우리나라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과 신형 호위함 ‘충남함’ 등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하고 있는 주요 함정을 살펴봤다.
델 토르 장관은 거제로 이동해 한화오션을 방문했다. 그는 권혁웅 한화오션 대표의 안내를 받아 함정 건조 현장을 둘러보고 건조 중인 대한민국 최신예 잠수함 장보고-III 배치-II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또한 함정이 건조중인 특수선 구역 외에 한화오션의 대규모 생산설비와 디지털생산센터, 시운전센터 등 사물인터넷(IoT)과 첨단 디지털 기술을 선박 생산에 접목한 설비도 두루 둘러봤다.
델 토르 장관의 방한 및 조선소 방문은 군사적‧산업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본토에서 해군 함정을 유지·보수·정비(MRO)하는 물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일부 물량을 해외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함정 수를 급격히 늘리는 중국의 ‘해양 굴기’에 대항해 미국이 자체적으로 건조하기 힘든 함정을 한국 일본 등지에서 해외 건조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델 토로 장관은 신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동맹은 한반도 및 역내 안보의 핵심축(linchpin)”이라면서 “특히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한민국이 중요하다. 앞으로 한미동맹이 과학기술동맹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MRO의 경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당장 시작해도 가능한 기술과 경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미 해군 함정 MRO를 위한 자격인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를 신청했고, 올 초 야드 실사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2022년 필리핀 미 해군 기지였다가 HJ중공업의 전신인 한진중공업이 건설한 수빅 조선소 부지 일부를 임대해 군수지원센터를 설립하며 국내 함정 건조 업체 최초로 해외 MRO 사업에 나선 바 있다. 수빅은 위로는 중국과 대만, 왼쪽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이, 오른쪽으로는 일본과 한국, 아래는 호주 등과 연결되는 사방에 걸친 해상 교통의 중추이자 군사적 요충지다. 남중국해는 필리핀과 중국이, 동중국해는 중국과 일본, 바로 옆에는 중국과 대만이 대치하고 있어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화약고 지대다. 그만큼 수빅의 지리적 중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 해군은 수빅 기지를 없앴지만, 조선소가 들어선 뒤에도 아시아 지역에 배치된 자국 군함의 MRO를 수빅조선소에 의뢰하고 있다. 이러한 수빅조선소에 HD현대중공업이 진출한 것이다.
한화오션은 국내 업계 최초로 MRO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기술이전 및 근접지원센터 등을 포함한 토털 MRO 솔루션(Total MRO Solution)을 제공하기 위해 해외기업과의 적극적인 기술협력에 나서는 등 함정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나서고 있다
또한, 한화오션은 장보고-I, II급 창정비 24척, 장보고-I급 성능개량 3척을 수행했으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3척의 성능개량 사업을 수행중이다.
제럴드 R. 포드 항모 한국서 건조하면 1조원 이상 절감
MRO에 이어 조선업계가 기대하는 것은 미국 함정의 국내 건조 성사이다. 델 토르 장관의 방한은 이같은 기대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미국은 자국 내 향만을 운영하는 상선은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해 한다는 ‘존스 액트(Johns Act)’를 유지하고 있는데 군 함정도 이에 적용을 받는다. 이로 인해 외국기업들이 미국 국적 상선이나 함정을 건조하려면 미국 내 조선소에 투자하거나 인수해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했다.
문제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에서 밀린 미국 조선소의 건조역량이 쇠태했다는 것이다. 쇠퇴란 함정 건조비용이 한국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것이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첨단 고부가가치 기술을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으나, 높은 인건비도 재료비, 자국산업 보호를 면분으로 한 과도한 수입제한 조치 등이 건조비 상승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취역해 현재 중동 분쟁찌역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미 해군의 최신예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호’의 최종 건조비는 한화로 17조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함정이다. 상선과 마찬가지로 함정은 철강재로 건조되는데, 대체적으로 함정 1척 건조비에서 철강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투함이 5~10%, 항공모함은 20% 정도 된다고 한다. 이를 대입하면 제럴드 R. 포드를 건조하기 위해 지불한 철강재 구매가격은 3조4000억원에 달한다.
미 함정은 특히 철강재 구매비용 비중이 높은데, 그 이유는 미국산 철강재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외국산 철강재가 이 조항에서 예외를 받으려면, 미국산보다 25% 이상 싸게 입찰해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미국산 철강재가 외국산보다 24% 비싸면, 계약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럴드 R. 포드 건조에 공급한 미국산 철강재는 외국산보다 최대 24% 비싸다. 만약 외국산 철강재를 공급받았다면 3조4000억원에서 2조5500억뤙르호 8500억원을 절감한수 있다. 8500억원 최신형 전투함 1척을 건조하거나 항공모함에 탑재하는 전투기 여러 대를 추가 구매할 수 있는 큰 액수다. 이 같은 조항의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한국에서 제럴드 R. 포드를 건조했다면, 비용을 최소 1조원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 해군은 지난 수십 년간 함정 건조가격이 터무니없이 취솟아 재정난에 고심하고, 그렇게 지은 함정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함정을 ‘찍어내며’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전체 함정 척수로는 이미 미국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기존 정책을 고수한다면 중국 해군의 빠른 양적 성장을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韓 건조 선체에 美 이지스시스템 얹어 판매 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은 전통적 우방인 한국에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조선 인프라와 고도의 기술력을 활용하여 중국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외교 통로를 통해 협력을 타진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 정부가 HD현대중공업이 설계‧건조한 함정 선체에 미국의 이지스함 시스템을 결합시키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됐다. 한국에서 건조하는 이지즈정은 미국 정부의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 받지 않으므로 건조비를 대폭 낮출 수 있다. 이를 미국의 우방국으로 수출하자는 게 당시의 구상이었다.
이러한 구상이 델 토르 장관의 방한으로 미 해군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미국 정부조달협정(GPA) 중에는 해외에 파견된 미군 기지는 군수품 등을 진출 국가 등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을 활용해 해외에 주둔하고 작전하는 미 함정 중 자국을 모항으로 하지 않고, MRO 등 성능개량 작업 등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수행하는 것
이라면, 한국 등 외국에서도 건조할 수 있다. 치솟는 함정 건조 및 운용 예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미 해군의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조선소에 비해 빠른 건조 기간 덕분에 최신함을 보다 빨리 보급받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과 바로 인접한 한국 조선소에서 미 함정을 건조한다면, 또 다른 전쟁 억지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과 미국이 ‘국방상호조달협정’(RDP, Reciprocal Sefense Procurement MOU)을 체결한다면 국산 함정의 미국 본토 수출길도 열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무기 조달시 ‘미국산 우선 구매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금액 기존으로 전체 원가의 55% 이상을 미국산 부품비로 채우도록 하는 제도로, 55%를 넘지 않으면 수출원가에50%가량 '할증'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또한 미국은 우선구매제도 적용 비율을 2028년에는 7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단, RDP 체결국에 한해서는 미 국방부가 자국 국익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제품에서 규정하는 비율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할증’을 피할 수 있다.
미국은 영국, 호주, 독일, 일본 등 28개국과 RDU를 체결했지만 정작 한국은 제외했다. 따라서 정부는 미 정부에 RDU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RDU 체결이 성사되면, 함정 협력은 모멘텀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HD현대重 100여척 건조, 한화오션 잠수함 기술 우위
한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미국 함정 방산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조선소 인수를 포함한 미국 투자확대방안을 논의중이다. 이런 가운데 미 해군과 MRO 및 함정 건조 협력이 실현되면 국내 방산산업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사는 다양한 선종에 걸쳐 다수의 함정을 건조하는 등 경험이 풍부하고 한국 해군에 이어 해외 판매 실적도 기록하는 등 함정 부문에서 미국과 가장 이상적인 협업 상대로 자리매김했다.
HD현대중공업은 1975년 최초의 국산 전투함인 울산함 개발을 시작으로 이지스구축함 배치-Ⅰ·Ⅱ를 개발했고, 해군의 중대형 함정 개발사업 23개 중 12개를 독자 개발했다.
특히 회사는 수상함 수출에서 국내 최다 수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필리핀으로부터 호위함 2척, 초계함 2척, 원해경비함 6척 등 해군 수상함을 모두 수주하는 등 지금까지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총 14척의 해외 함정 수주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3척을 모두 건조하고 있는 등 총 100여척의 최첨단 함정을 건조하며 대한민국 영해 수호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1981년 방산업체 지정 후 최근까지 50여척의 수상함을 건조한 만만치 않은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현재 운용 중인 해군 구축함 사업의 모든 라인업(KDX-I, II, III)에서 건조 실적을 가진 유일한 업체다. 아울러 우리 해군이 추진한 총 15척의 구축함 사업 중 7척을 성공적으로 건조한 바 있다.
이밖에도 1998년 방글라데시 해군 호위함을 시작으로, 2010년 말레이시아 훈련함 2척, 2012년 영국 항공모함 군수지원함 4척, 2013년 6월 노르웨이 군수지원함 1척 등을 수주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