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철태만상(79)] 금문교 자살 방지망의 비극

글로벌이코노믹

[철태만상(79)] 금문교 자살 방지망의 비극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이미지 확대보기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에메랄드빛 바다, 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현수교 밑에는 초승달이 내린다. 그 초승달 위로 출근길의 자동차들이 연이어 바다를 건넌다. 맑은 날이 아니면 금문교의 전체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장대한 이 다리를 만나는 순간 훅~ 할 정도로 숨이 막힌다.

계곡을 건너게 한 금문교의 전설은 너무도 많다. 안타까운 것은 이 금문교 위에서 매년 약 30명의 사람들이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일이다. 이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1억4200만 달러(약 1952억원) 규모의 자살 방지 그물망이 건설된다는 뉴스가 지난해 보도됐었다.

이 프로젝트는 다리 난간 밑에 그물망을 설치하는 것이다. 수년간 지연되다가 결국 4억 달러(약 5498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그물망이 조성된다. 이 그물망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에서 뿜어져 나오는 낭만적인 운치를 여지없이 망가뜨릴 것이다.

자살 방지를 위해 4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들여 그물망을 건설한다는 생각은 미국의 정신건강 관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이 미국 사회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특히 의학계의 생각은 좀 더 구체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었을 때 가족, 친구, 지역사회가 느끼는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어서 보호망을 구축하는 게 매우 중요하지만,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뛰어내리기 훨씬 전에 그들을 붙잡는 것이 훨씬 더 인도적이란 의견을 의료계가 내놨다.

연간 30명을 구하기 위해 4억 달러를 지출하는 미국인들의 생각은 과연 자금의 오용인가? 현재 샌프란시스코만의 베이 지역 인구는 약 330만 명. 금문교에서 뛰어내리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85%가 금문교에서 차로 한 시간 이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자살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4억 달러의 자금은 수도권 교통위원회, 캘리포니아 교통부, 금문교 지구 수익, 캘리포니아주 정신건강기금, 개인 및 자선 재단의 기부금 등 여러 출처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소송이 발생한 끝에 이 비용은 결국 교량 통행료 인상 등의 형태로 납세자에게 부과된다고 한다. 자살 방지를 위해 다리 통행료를 더 내야 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자살 방지는 정신질환 예방과 조기 개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물망 설치는 단순한 생각이다. 그물망으로는 전체 자살률을 감소시키지 못한다. 2021년에 미국에서 기록된 4만8183건의 자살 중 골든게이트 투신자살은 전체 자살 사망자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반면에 총기는 전체 자살의 절반 이상에서 사용됐다. 총기를 선택한 자살자에게 다리 밑의 4억 달러짜리 그물망은 전혀 안전망이 되지 못한다.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의 90%는 사망 당시 진단이 가능한 정신건강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있다. 선별 검사, 치료, 약물 치료, 약물 남용 치료, 개인 및 가족 상담을 포함한 4억 달러 상당의 정신건강 치료가 베이 지역 또는 미국 내 모든 도시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자살을 고려하기 훨씬 전에 우울증, 약물 남용 및 자살 위험을 높이는 기타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고려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미국 의학계의 판단이다.

골든게이트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직업은 학생이라고 한다. 그다음이 교사였다. 미국 청소년 위험 행동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1년 미국 고등학생 10명 중 1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미국은 전례 없는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전체 정신질환의 절반이 14세부터 시작되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청소년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적 도움을 준다면 연간 30명 이상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질 것이다. 세상 모든 여행자들에게 감탄과 낭만의 영감을 주는 금문교에 흉측한 자살 방지 그물망을 설치하는 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