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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 1000억원 투자해 인조 가발 원사 개발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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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 1000억원 투자해 인조 가발 원사 개발한 이유는?

고품질 ‘모다크릴’ 세계 두 번째 상용화, 수출 개시
인구 증가세 이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소비자 겨냥
가발, 1970년 총수출의 10% 차지한 효자 상품
영국 앤 공주, 엘리자베스 테일러 한국산 속눈썹 사용키도
태광산업의 모다크릴 가발사 '모다본' 로고와 모다본으로 제작한 다양한 제품. 사진=태광산업이미지 확대보기
태광산업의 모다크릴 가발사 '모다본' 로고와 모다본으로 제작한 다양한 제품. 사진=태광산업
한때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에 달했던 ‘메이드 인 코리아’ 가발이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로 과거의 영광 재현을 꿈꾸고 있다.

태광그룹 섬유·석유화학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고품질 가발 소재 원사 ‘모다크릴(modacrylic)’의 수출 판매를 시작했다고 20일 밝혔다.

모다크릴은 인조 가발과 난연재로 주로 사용되는 폴리아크릴계 섬유다. 태광산업은 일본 화학기업 ‘카네카(Kaneka)’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모다크릴 상용화에 성공, 지난 2021년 ‘모다본(Modabon)’이라는 브랜드를 선보인 바 있다.

태광산업은 모다크릴 개발에는 100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했다. 한국에서는 사양산업 또는 일부 중견‧중소기업만 명맥을 잇고 있는 인조 가발 산업에 대기업인 태광산업이 개발을 추진한 것은 그만큼 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내다봤기 때문이었다. 미용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패션 가발이. 인구 고령화는 물론 젊은 세대들도 겪는 탈모로 인해 가발과 헤어피스 등의 수요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태광산업은 올해 초부터 모다크릴 시장 성장 가능성과 사업성을 자세히 재검토한 뒤, 생산 설비 보완과 공정 개선을 거쳐 지난 3월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목표 지역은 아프리카였다. 세계 가발 시장은 연평균 10%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카네카 한 곳만이 모다크릴을 생산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특히 아프리카 가발 시장은 경제적 낙후와 정치 불안 요소가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향후 시장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UN) 통계에 따르면 오는 2050년에는 아프리카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할 전망이다.

흑인 인구 비중이 높은 미국 시장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 아이비스 월드(IBIS Worl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의 가발‧헤어피스 생산 규모는 약 2억58000만달러 규모를 기록했으며 향후 연간 1.2%씩 성장해 2026년에는 약 2억7400만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태광산업 울산공장에 위치한 모다크릴 공장 전경, 사진=태광산업이미지 확대보기
태광산업 울산공장에 위치한 모다크릴 공장 전경, 사진=태광산업
태광산업은 모다크릴 양산 직후 흑인용 가발 제조사들의 평가를 거친 결과, 경쟁사인 카네카의 원사만큼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종 소비자인 흑인 여성들을 상대로 시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선호도가 더 높았다고 전했다.

태광산업은 가발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다양한 색상의 구색을 갖춘 뒤에는 판매에 속도를 높일 방침이다. 주 소비시장인 아프리카와 북미권을 겨냥, 판매량 증가에 맞춰 점진적으로 생산량도 늘릴 예정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아프리카와 미국 시장의 소비 역시 주춤한 상황이지만 경기 회복에 따라 가발 수요 또한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카네카의 독점 공급에 따라 막혀있던 시장도 점차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광산업은 본격적인 사업 재개와 함께 지난 2021년 설립한 나이지리아 라고스 현지 법인은 해산할 방침이다. 마케팅과 시장 조사라는 소임을 다한 만큼, 본사 주도로 직접 대응하는 방식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현지 고객사와의 협업 마케팅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한편, 가발은 수출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한 상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1960년 전국적인 수출드라이브가 시작되면서 한반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해외로 내다 팔았 데, 가발과 속눈썹은 처음에 이색상품으로 개발됐다. 그런데 매년 수출이 급신장해 1966년에는 수출액이 각각 1067만8000달러와 126만5000달러에 이르렀다. 3년 뒤에는 가발 수출이 5배가 늘어난 5336만1000달러, 속눈썹은 6배가 증가한 725만7000달러에 달했다. 전체 수출 규모가 10억 달러에도 못 미쳤던 당시로서는 큰 물량이었다.

국내에서 고물 장수와 엿장수들이 골목골목을 누비며 수집한 국민의 머리카락을 원료로 제작한 가발과 속눈썹을 우리 유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할렘을 누비고 다니며 팔았다.

국내외를 불문한 국민의 거국적 노력의 결과, 1970년에는 가발만도 수출실적이 9000만달러에 달해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했다. 품질도 실적 못지않은 황금기를 누려 영국의 앤 공주까지 한국산 속눈썹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분장을 맡은 분장사는 “클레오파트라의 속눈썹은 한국산”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산업이 중화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공업에 속했던 가발 산업은 위축되었으나 지금도 규모는 작지만, 수출 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23년 기준 인조 가발용 원사(HS코드 6703호) 수출액은 약 403만달러였으며, 가발과 속눈썹 등의 제품(HS 6704호)는 약 2109만달러에 달했다. 인조 가발 원사가 만들어지기 전 원재료였던 사람 머리카락(HS 0501호)도 약 19만달러를 수출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