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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 필리핀 수빅 조선소 인수설 재점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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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 필리핀 수빅 조선소 인수설 재점화하나

현지서 해상 플랫폼 개발에 향후 10년간 5.5억달러 투자
마르코스 대통령 “HD현대가 필리핀 조선업 새로운 시작”
초대형 수빅 조선소 운용 노하우 보유한 기업은 한국기업뿐
필리핀 해군과의 협력 확대, 미 해군 MRO 사업 위해 필요

(왼쪽부터)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알렉스 버나드 서버러스 캐피탈 아시아 총책임자가 지난 5월 4월 14일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에서 HD한국조선해양과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탈 수빅 조선소 향후 운영 계획  발표행사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HD한국조선해양이미지 확대보기
(왼쪽부터)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알렉스 버나드 서버러스 캐피탈 아시아 총책임자가 지난 5월 4월 14일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에서 HD한국조선해양과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탈 수빅 조선소 향후 운영 계획 발표행사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의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인 필리핀 수빅 조선소 인수를 포함한 운영 참여설이 다시 점화하고 있다.

초대형 상선을 건조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 내 유일한 초대형 조선소라는 이점 이외에도 군사적 요충지인 수빅 조선소의 입지 조건이 한화그룹과 방산 부문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과 필리핀, 미국과의 협력의 일환으로 중요성이 강조되어 가고 있어서다.
HD현대의 조선‧해양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14일 필리핀 대통령 관저(말라카냥궁)에서 수빅 조선소를 운영하는 미국 사모펀드(PEF) 서버러스 캐피탈(Cerberus Capital)과 수빅 조선소의 향후 운영 계획 등을 발표하는 행사를 가졌다.

HD현대는 지난 2022년 11월 HD현대중공업이 수빅 조선소 내에 있는 필리핀 해군기지에 군수 지원센터(Lifetime Support Service Center·LSSC)를 개소하고, 필리핀 해군에 인도한 함정들에 대한 유지‧보수‧정비(MRO)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어 HD한국조선해양은 이날 필리핀 정부와 향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수빅 조선소를 해상풍력 하부구조물과 선박 블록 제작, 선박 수리 등이 가능한 해양복합단지(Maritime Complex)로 육성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HD현대가 해양 플랫폼 개발을 위해 향후 10년간 5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수빅 조선소 내에서의 입지를 한층 강화한다는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국내에 행사가 열렸다는 형식적인 내용만 알렸고, 투자 규모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앞서 부정해 왔던 수빅 조선소 인수설과 연루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HD현대의 투자 확대 발표에 필리핀 조선업의 전성기를 다시 열어줄 것이라며 강한 기대를 걸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필리핀 대통령을 이날 “(HD현대가) 수빅에서도 선박을 건조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HD현대는 또 하나의 해외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바로 HD현대베트남조선”이라면서, “HD현대의 참여는 필리핀 조선업의 ‘새로운 시작’과 ‘강력한 기반’을 제공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필리핀)는 세계 최대 유능하고 유능한 선원 공급원으로서의 입지를 확립했다”면서, “다음 단계는 필리핀인이 운영하는 선박을 필리핀인이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경영했던 당시 필리핀 수빅 조선소 전경.이미지 확대보기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경영했던 당시 필리핀 수빅 조선소 전경.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서쪽으로 110km 떨어진 수빅만에 있는 수빅 조선소는 국내 조선사가 해외에 건설한 가운데 가장 가장 늦게 건설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미군이 주둔하던 해군기지 부지를 매입해 마련한 총 300만㎡(약 90만평) 규모에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국내 조선 빅3 초대형 조선소의 장점만을 골라 2009년 완공했다. 길이 550m, 넓이 135m, 깊이 13.5m로 축구장 7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세계 최대 크기의 제6도크를 비롯해 철판에서 블록, 도크로 이동하는 운반 거리가 1km를 넘지 않는 효율적인 동선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 해군기지로 사용됐을 정도로 지리적 이점이 크다는 게 수빅 조선소의 최대 강점이다. 수빅만 위로는 중국과 대만, 왼쪽은 베트남과 에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이, 오른쪽으로는 일본과 한국, 아래는 호주 등과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중추이자 군사적 요충지다. 남중국해는 필리핀과 중국이, 동중국해는 중국과 일본이, 바로 옆에는 중국과 대만이 대치하고 있어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화약고 지대다.

해군기지는 철수했지만, 미 해군은 지금도 아시아 지역에 배치된 미 해군 군함의 긴급 정비·수리 업무를 수빅 조선소에 의뢰하고 있다.

이러한 수빅 조선소를 필리핀 정부가 새 주인 물색 작업을 시작하자 중국 업체들이 참여했다는 소식에 주변국들이 긴장했다가 서버러스 캐피탈이 인수함으로써 사태는 진정됐다. 서버러스는 대규모 인프라 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PEF이지만, 수빅과 같은 초대형 조선소를 운용해 본 경험이 없으므로 국내 조선사의 참여를 유도해 왔으며, 그 첫 결과가 HD현대였다.

상선 발주시장이 호황기로 돌아섰지만, 아직은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가가치선에 집중되어 있어, HD현대로선 수빅 조선소 인수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방산 부문에서 필리핀과의 협력 확대에 더해 최근 미국 국방부가 함정의 자국 건조‧ MRO 원칙 개정 등을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리핀 정부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해군력 증각 프로젝트인 ‘포스믹스(Force Mix)’를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데, 1000억페소(한화 약 2조4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방공호위함 6척 △대잠초계함 12척 △원양 초계함 12척 △잠수함 3척 △전략 수송선 4척을 핵심 전력으로 하고, △초계정 40척 △고속공격정 42척을 보조전력으로 하는 등 총 82척의 함정을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이 가운데 HD현대중공업은 2600t급 호위함 1번 함인 호세 리잘(Jose Rizal)함을 2020년에, 2번 함 안토니오 루나(Antonio Luna)함으로 이듬해 인도했으며, 필리핀 해군은 동급 호위함을 4척 더 발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필리핀 해군은 대한민국 해군이 퇴역시킨 포항급 초계함인 충주함을 2016년 인도받아 ‘콘라드함’으로 개명해 운용하고 있다. 우리 해군은 2020년대 중반까지 포항급 초계함 12척을 모두 퇴역시킬 예정인데, 필리핀 해군의 대잠 초계함 수요가 12척인 것과 고려하면, 상당수가 인도될 것으로 기대되며, 이러면 상당한 수준의 MRO 수익이 기대된다.

이와 함께, 미국은 중국의 해군력 강화에 대응책의 일환으로 자국 해군 함정의 작전지역 내에서의 MRO를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호주와 함께 필리핀 수빅 조선소도 유력지역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RO가 이뤄지면 미 해군이 작전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함정을 그 지역 동맹국에서 건조하되, 특히 한국과의 협력이 유력할 것으로 기대된다.

HD현대로서는 이러한 미 해군 함정 MRO와 신조 시장 참여를 위해 수빅 조선소 인수를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로 검토할 수 있으며, 해상풍력 등 플랜트를 중심으로 한 민간사업과 연결해 투자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