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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태만상(85)] 나폴레옹이 선택한 통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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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태만상(85)] 나폴레옹이 선택한 통조림

통조림 캔.이미지 확대보기
통조림 캔.
전장에서는 강력한 무기와 고열량 식량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끊임없이 진군하고 이동해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식량이 생존을 좌우한다. 불을 피워 조리하는 것은 적에게 위치를 노출시켜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다. 수많은 전쟁 역사 속에서 전투식량 휴대 방식에는 '강철'의 효용성이 자주 등장한다.

몽골 칭기즈칸의 기마부대는 유럽 침략 당시 장기 보존이 가능한 육포를 말안장에 매달고 전쟁에 나섰다. 고기나 생선을 육포로 만들면 오랫동안 부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염장 식품과 곡물 가루를 뭉쳐 만든 포를 장기 보존 식량으로 활용했다. 염장 식품은 휴대가 어려웠지만, 포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어 전투식량으로 적합했다.
일본은 전국시대에 가다랑어포, 벌꿀, 탁주를 섞어 반죽한 뒤 동그랗게 말린 경단을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 조선은 말린 북어, 찐쌀, 미숫가루, 인절미, 말린 두부를 활용했다. 주먹밥은 쉽게 상하고 불로 조리해야 했기 때문에 전투식량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비스킷과 건빵, 말린 과일 등을 휴대했으며, 로마군은 건빵 부클럼을 휴대했다. 병이나 깡통에 음식을 담는 방식은 18~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

1800년 프랑스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멀리 파병된 군인들이 먹을 건강식품 개발에 상금 1만2000프랑(현재 가치 약 6000만원)을 내걸었다. 이 거액의 상금을 거머쥔 사람은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였다. 그는 3주 전에 담근 채소를 넣어 밀봉한 샴페인 병 두 개를 심사위원에게 제출했다. 아페르는 채소를 요리한 뒤 병에 넣고 코르크 마개로 막았다. 이 병을 끓는 물에 데우면 병 안의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고 보관도 오래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저온 살균법'의 시초다.

아페르의 병조림 방법은 프랑스군에 보급되어 육류, 채소, 달걀, 소스 등 18가지 식품이 유리병에 담겨 전선에 보내졌다. 나폴레옹 군대는 다른 군대와 달리 개인이 직접 식량을 휴대할 수 있어 기동력이 월등히 높아졌다. 프랑스군이 전쟁에서 연전연승하자 아페르는 영웅이 되었다.

양철 깡통에 식품을 보관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은 1810년이다. 영국 상인 피터 듀란드는 아페르의 병조림법이 나온 지 몇 달 만에 이 통조림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깡통 통조림의 원조다.

듀란드의 주석 캔은 깨지지 않아 아페르의 유리병보다 더 우수했고 해양 국가인 영국 특성에 알맞았다. 선박에서는 깡통 캔이 훨씬 안전했기 때문이다. 듀란드의 양철 캔은 얇은 철판에 주석을 도금해 철이 녹스는 것을 방지했고, 유리처럼 깨지지 않아 병사들이 배낭에 넣어 이동하기 쉬웠다. 영국은 캔 조림을 대량으로 제조해 전선에 보냈다.

영국은 듀란드가 개발한 용기를 주석 깡통(tin canister)이라 불렀는데, 이는 오늘날 캔(can)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 1822년부터 프랑스와 영국의 캔은 '유럽의 공장' 역할을 하던 미국으로 건너가 대중용 캔으로 대량 생산됐다. 초기 깡통 캔은 50년 동안 망치와 끌로 따야 했으며, 주 소비층인 군인들은 총검으로 통조림을 따기도 했다. 1855년 로버트 예이츠가 캔 따개를 발명하면서 이러한 불편함은 사라졌다.
1851년 아페르의 조카 레몽 슈발리는 고압 수증기를 이용한 살균기를 발명해 특허를 얻었고, 1853년 미국인 원즐로는 고온에서 완벽하게 살균하는 법을 알아내 미국 최초의 대규모 통조림 공장을 세웠다. 1861년 미국 남북전쟁에서 통조림은 군인들의 휴대 식량으로 이용됐으며, 탐험가들에게도 애용됐다.

통조림용 주석 도금 강판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기업은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TCC스틸이다. 현재는 니켈 도금 강판을 개발해 캔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