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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에 '소송 남발' 우려…"無의미 개정"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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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에 '소송 남발' 우려…"無의미 개정" 비판도

한경협·그룹 사장단, 긴급 성명 발표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 공평 이익' 포함
"공평·총주주 개념 추상적…주주권익 보장 못해"
"분할·합병 중심 주주 손배소 보장이 현실적" 제언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앞줄 가운데)과 주요 기업 사장단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긴급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앞줄 가운데)과 주요 기업 사장단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긴급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액 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주주에 대한 이사회의 충실·보호 의무를 추가한 상법 개정안을 두고 재계가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성장 동력이 꺼져 한국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추상적 표현은 실효성이 없다며 분할과 합병 과정에 초점을 맞춰 법안을 바꿔야 소액 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상근부회장과 주요 그룹 사장단 16명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한경협과 대한상공희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8단체는 지난 14일 같은 취지의 입장문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등 재계 주요 인사들까지 나섰다. 한경협이 주요 기업들과 공동 성명을 낸 것은 전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시절인 2015년 7월 이후 9년여만이다.
김창범 부회장과 주요 기업 사장단은 성명서를 통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들은 소송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이라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 증시의 ‘밸류 다운’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19일 발의했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했다. 주주의 이익도 이사회 논의·결정 과정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합병·분할 등 기업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소액 주주들의 이익이 배제된다는 것이 발의 이유다.
이와 같이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가 바뀌면 이사회의 결정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간 회사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으로 회사가 잘 돼야 주주가 잘 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며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면 회사와 주주가 동시에 잘 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법 개정안의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사회의 충실 의무에 포함된 주주의 이익을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고, 공평한 대우가 무엇인지 추상적이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최준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의 충실 의무라는 조항 자체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이나 관련 소송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여기에 공평 의무라는 개념이 굉장히 추상적이기까지 해서 실질적으로 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의미 없는 개정’”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주주부터 장기 투자를 염두에 둔 주주까지 모든 주주의 생각이 다르다”며 “'총주주'의 이익이 무엇인지 한 방향으로 규정할 수 없어 결국 이사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못하도록 ‘손발을 묶는’ 셈”이라고 말했다.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개정안 취지를 실현하려면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특히 소액주주들이 우려하는 합병 사안을 중심으로 법령을 개정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최 교수는 “대통령실·여당의 주장처럼 소액주주 이익 침해 논란이 벌어지는 기업 분할·합병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주주들에게 현실적 도움이 된다”며 “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을 상법에 반영하고, 자본시장법 시행령상 합병비율 산정 공식에 시가 대신 ‘공정한 가격’을 반영해 주주들이 기업과 협상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정승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rn72bene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