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등장으로 북미 지역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온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참모가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의 우회 수출 통로로 간주된 멕시코의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고관세를 매기겠다고 트럼프 당선인이 엄포를 놓은 터라 북미 투자계획을 실행하는 한국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의 공동 수장을 맡기로 한 비벡 라마스와미는 26일(현지 시각) 소셜네트워킹서비스 ‘엑스(X)’ 게시물을 통해 칩스법과 IRA에 근거를 둔 보조금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냈다. 조 바이든 현 행정부는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기업들에 칩스법과 IRA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데, 라마스와미는 이를 두고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25일 취임 직후 멕시코와 캐나다를 대상으로 25%의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더해졌다. 대중국 견제와 보호무역 기조가 뚜렷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북미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이들은 2016년 트럼프 1기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서 미국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대미 투자를 단행했다. 칩스법과 IRA의 보조금은 투자 부담을 줄여주는 ‘당근책’이었다. 텍사스주와 인디애나주에 각각 설비를 투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와 칩스법 보조금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현대자동차는 향후 IRA 전기차 세액공제 적용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멕시코 진출도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미국과 캐나다·멕시코는 무역협정 ‘USMCA’를 맺고 역내 생산품과 인력으로 만든 제품을 중심으로 관세를 매기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데다 미국보다 인력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을 노리고 멕시코에 생산설비를 확충했다. 주요 진출 기업은 기아와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이다.
칩스법·IRA 보조금 축소·폐지와 멕시코 관세 인상이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메시지로 기업들은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특히 북미 지역에 전방위적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이 이러한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줄이는 등 계획을 바꾸기 위해 고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충성파 인물로 참모진을 구성해 (당선인과 참모진의) 메시지만으로 한국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느끼게 된다”며 “칩스법과 IRA 보조금은 인텔이나 GM 등 미국 기업도 같이 피해를 보므로 현실화 여부를 지켜봐야 하지만, 미국에 피해를 덜 주는 멕시코 관세 인상안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