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 시켜야 하는 사람, 시킨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이 주인이요, 누가 시켜서 하면 머슴이요, 종이다.
말은 쉽지만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다. 예전에 기업에서 근무할 때 ‘사장 입장에서 일을 하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속으로 ‘사장 시켜줘 봐라. 그러면 자연히 사장 입장에서 일 하지’.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다. 사장은 누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사장의 생각과 행동을 하다보면 언젠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시키는 일만 마지못해 하는 사람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한 사람은 “벽을 쌓기 위해 돌을 깎고 있다”고 답하고, 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죠” 하고 답한다. 조금 가다가 다른 인부를 만나 같은 질문을 하니 “나는 지금 하느님을 위하여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마음 자세에 따라 의미와 보람이 다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를 그릴 때의 일이다. 벽화는 크기가 183㎡나 되는 대작이었다. 하루는 그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천장 구석에 인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그려넣고 있었다. 한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이보게, 그렇게 구석진 곳에 잘 보이지도 않는 걸 그려 넣으려고 그 고생을 한단 말인가? 그래봤자 누가 알겠는가?”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내가 알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느 아파트 경비원이 칼 가는 기술을 배워 주민들의 칼을 무료로 갈아 주어 칭송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반면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무거운 물건을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슬며시 외면을 한다. 언젠가 연구소에 스피치를 배우러 온 한 회원이 강의 시작 전에 걸레를 들고 강의실 바닥을 열심히 닦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닥을 보니 많이 더러워서 닦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회원이 드나들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지 하나 줍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두가 객이요 남이기 때문이다. 마음 하나 바꾸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주인의 마음을 갖는다면 어느 자리 어느 곳에 가든 할 일이 있고, 참된 주인이 될 수 있다.
지난 주말 시골 친척집에 다니러 갔을 때 마당 안팎에 널린 개 배설물을 치우며 수처작주를 실천해 봤다. 그 집에서 개의 배설물을 치우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지저분해도 누구 하나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는 동안은 나는 객이었다. 주인이 되어 실천을 하니 자족(自足) 마음이 들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언을 상기하며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생각한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면 최선을 다하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즐겁게 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지금 바로 하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있는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이며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건용 공감스피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