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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충전하러 갔다가 방전돼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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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충전하러 갔다가 방전돼 오셨나요

'7말 8초' 휴가 전쟁…교육부와 재계 나서면 휴가 쏠림 극복 가능

산업부 길소연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산업부 길소연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길소연 기자] 여름휴가 극성수기를 다른 말로 ‘7말8초’라고 한다. ‘7월 말 8월 초’를 줄여 쓴 표현이다. 이것도 귀찮은지 ‘말초’라고도 부른다. 대통령도 7말8초에 휴가를 떠났으니 이젠 휴가공식이다. 서울은 텅텅 비고 바다와 계곡은 꽉꽉 몰린다. 부작용도 크다. 몰리다 보니 쉼(休)은 없다. 휴가가 스트레스다.

피서지마다 휴가객이 몰려 심각한 교통체증이 일고 행락지 혼잡, 바가지 상혼이 기승을 부린다. 재충전하러 휴가 갔다가 열 받아 방전돼 오기 십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인 이상 535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7년 하계휴가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 대부분이 8월 초 평균 4일 정도 여름휴가를 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계휴가가 집중되는 시기는 8월 초순이 49.3%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7월 말로 29.7%가 나왔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의 약 80%가 7말8초에 여름휴가를 가고 있다. 이른바 ‘휴가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조사결과를 입증하듯 지난달 31일 여름휴가가 시작되자 하늘 길과 고속도로는 하루종일 몸살을 앓았다. 인천공항 출국장은 하루 여객 수가 20만4554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고속도로 곳곳이 주차장으로 변했다. 상황이 이런데 휴가지에서의 휴식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휴가객이 몰리는 이유는 자녀들 학원 방학과 국내 대기업 휴가에 따른 도미노 현상 두 가지로 보인다.

자녀가 있다면 휴가 결정 기준은 무조건 자녀의 학업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학원가의 방학이 7월 말에서 8월 초로 편중되다 보니 이때가 아니면 휴가를 가지도 못하게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학원생 부모도 불만이지만 학원 선생도 이때 휴가가 몰려 제대로 쉬지 못해 불만이라고 한다. 학원가가 쉬는 것으로 담합을 했을리는 없고 충분히 교육부가 나서 방학 일정이 분산되도록 개도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초·중·고교 재량 휴업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도 방학 분산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학교장 재량으로 징검다리 연휴 사이에 끼인 날을 휴일로 지정해 학생들의 휴식 기간을 늘림으로써 가족여행을 장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만 해도 내년부터 휴가 분산을 위해 ‘키즈 위크’ 제도를 도입한다. 내년부터 전국 초∙중등학교의 여름방학 혹은 겨울방학의 5일을 봄이나 가을 학기 중 사용하도록 하되, 지자체별로 사용 시기를 다르게 해 휴가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휴가는 여름에만 떠나는 건 아니다. 연중 균등하게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휴가를 가면 하도급 업체들과 주변 상권도 같이 문을 닫고 열어야 한다. 휴가 도미노다. 연가를 다 쓸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충분히 산업계가 상의해서 조율할 수 있어 보인다. 그 어렵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재계가 휴가 일정을 적절하게 분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최근 정부가 휴가를 독려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근로자의 휴가비를 지원하는 ‘한국형 체크바캉스' 추진을 시사했다. 또 기업들도 집중 휴가제와 안식월 도입 등 장기 휴가 등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다. 긍정적이다. 휴식과 재충전이 있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제는 휴식의 보장을 넘어 휴식의 질적 관리도 필요하다. 휴가 떠나라고 등을 떠미는 것도 좋지만 잘 갔다 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길소연 기자 k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