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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혐’에 가린 왁싱샵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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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혐’에 가린 왁싱샵 살인사건

온라인뉴스부 백승재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온라인뉴스부 백승재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백승재 기자] 살인사건이다. 홀로 왁싱샵을 운영하는 여성이 파렴치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온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도움 한 번 청하지 못하고 서른 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피의자 배모 씨(30)가 왁싱샵을 알게 된 건 인터넷 방송에서였다. 방송에서 피해자가 홀로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안 그는 흉기를 들고 왁싱샵을 찾아가 왁싱 시술을 받은 뒤 피해자를 수차례 찔러 죽이고 금품을 탈취해 자리를 떴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도 시도했다. 경찰조사를 통해 피의자가 무직이고 600만원 상당의 카드빚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시선은 해당 인터넷방송 BJ에게 쏠렸다. 해당 BJ는 방송을 통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해당 BJ가 왁싱 시술 영상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올리고 시술을 받으며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등의 말을 해 왁싱 시술을 성(性)적으로 표현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자라서’라는 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은 ‘여혐사건’으로 돌변했다.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제 2의 강남역 살인사건’이라 불리기 시작하며 공론화 시위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는 6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혐오’란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뜻이다.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피의자가 여성을 미워하고 싫어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얘긴데, 피의자는 여성혐오와 관련된 진술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여성을 혐오해서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사건을 여혐사건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칫하면 큰 맹점을 만들 수 있다. 피해자는 무참히 살해당했고 피의자는 법적인 절차에 따라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엄정한 법집행은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사건의 본질은 ‘살인’이다. 사건이 ‘여혐’으로 공론화 됐을 때 ‘살인’이라는 본질이 가려져선 안 된다.

4일 한 커뮤니티를 통해 피해자의 유족이라는 이의 글이 올라왔다. 공론화 되는 것이 자신들을 더 무너지게 한다며 제발 시위를 취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누리꾼은 이에 대해 "이번 시위에서 말하고 싶은 건 피해자분의 죽음이 아닌 여성 혐오"라며 "유족 분들 심정도 이해하지만 이번 시위에 개입하실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미 피해자는 가려지고 있다.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는 주최 측의 취지는 좋다. 하지만 본인들이 원하는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2차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다.


백승재 기자 tequiro0713@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