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들이 네댓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지우고 삭제된 항목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사진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우르르 몰려가 대열에 합류했다. 6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공론화 시위 및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많은 이들이 겪은 일이다.
이번 시위는 여성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열렸다고 주최 측은 말했다. 이날 주최 측은 사진 촬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취재진이 아닌 일반인들의 사진 촬영을 통제하고 사진 삭제를 요구했다. 주최 측은 시위 참석자들에 대한 성희롱이나 폭언, 신상노출 등을 우려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시위 전 피해자의 유가족과 지인들은 시위로 인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시위 추진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한 누리꾼은 "이번 시위에서 말하고 싶은 건 피해자분의 죽음이 아닌 여성 혐오"라며 "유족 분들 심정도 이해하지만 이번 시위에 개입하실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최 측이 여성혐오 공론화를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최 측의 행동에서 그들이 무엇을 공론화시키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든다. 살인사건이라는 사건의 본질은 뒤로한 채 ‘여성이 살해당했다’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대중의 일반적 접근을 막고 언론보도만 허용하는 모습이 “내 말이 맞으니 내 말만 들어”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의 행동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아니라 그냥 ‘여성혐오’를 공론화시킬까 우려된다.
백승재 기자 tequiro0713@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