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대형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만난 주부 김모 씨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백화점 추석 기획전 판매대 선물세트들은 최대 몇 만원씩 흥정이 가능했다. 제품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직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순식간에 정찰가에서 4만~5만원이 내려갔다. 상품에 붙어 있는 가격표가 유명무실했다.
실제로 선물세트 가격은 “싸게 해 달라”는 요청을 거듭할수록 내려갔다. 직원은 익숙한 듯 13만원짜리 청과세트를 11만원까지 할인해 제시했다. 한 번 더 조르니 10만원으로 내려갔다. 직원은 “최대한 깎아줬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로서 할인은 반가운 단어다. 문제는 국내 유통업체에서 내놓은 가격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제값에 사면 부자, 아니면 바보”라는 농담까지 나돈다. “싸면 싼 이유가 있고,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다”는 가격에 대한 믿음까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주요 백화점들은 추석 연휴 한 달 전부터 세일 홍보에 열을 올렸다. 추석 특수를 겨냥했던 백화점들은 벌써 뿌린 것 이상을 거두어 들였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1일부터 진행한 추석 선물세트 본 판매 행사 매출이 20일 현재 전년 대비 81.3% 신장했다. 8월부터 진행한 사전 예약판매 매출도 36.1% 신장했다.
열을 올리며 추석선물세트 할인 판매 경쟁을 펼친 백화점 풍경이 떠올라서일까. 백화점 업계의 대대적인 추석선물세트 신장율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유통업체들은 매출 신장보다 ‘가격에 대한 신뢰’를 먼저 살려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엔 미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지명 기자 yol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