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시점에서 경영쇄신을 위해 물러나겠다는 권 부회장의 행동을 두고 모두들 ‘용퇴’라고 입을 모은다. 정말 그럴까?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에 매출 62조 원, 영업이익 14조 5000억 원의 잠정 실적을 기록했다고 13일 공시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 달성한 5조 2000억 원과 비교해 거의 세배나 늘어난 수치다.
권오현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성장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권오현 부회장이 몸담고 있던 32년 간 삼성전자는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반도체 전문가로서 권오현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반도체 산업의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퇴를 표명하며 권오현 부회장은 “저의 사퇴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박수칠 때’ 떠나며 후배들에게 후사를 맡기는 권오현 부회장의 모습은 물러날 때를 아는 현명한 경영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말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 중인 이때 주요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냐는 거다.
권 부회장은 사퇴의 뜻을 밝히며 현재 삼성전자가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 분기의 최대 실적 기록이 지금까지 투자의 결실일 뿐이라며 삼성전자가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 부회장의 말처럼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면서도 수심이 가득하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감으로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오너 리스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 오너 부재로 차기 성장 동력을 위한 투자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는 중이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앞두고 배에서 내리겠다는 선장인 셈이다.
엄중한 때에 사퇴를 결정한 것이 과연 ‘용기 있는 퇴진’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유다.
백승재 기자 tequiro0713@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