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삼성 OO일 인사’라는 추측성 보도를 하기 바빴다. 이 모습은 마치 인디언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마지막 인사가 실시된 당일 아침까지도 계속됐다.
삼성전자의 올해 인사는 가수 오승근의 노랫말로 정리된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삼성은 세대교체를 위해 승진과 퇴진의 기준으로 나이를 택했다.
권 회장 등 일부 고위임원들은 비교적 사정이 나은 편이다. 후방에서 그간 축적한 업무경험과 노하우 등을 살려 지원사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퇴사 통보를 받은 임원들은 젊음을 바친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 나이가 원수가 됐다.
삼성 내부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60세라는 ‘암묵적 마지노선’이 형성돼 권오현 회장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임직원들은 60세가 되면 퇴직 통보를 받게 된다. 마지노선에 가까운 1959~1962년생 임직원들은 본인 업무 보다 새 일자리를 찾는 일이 더 시급한 처지가 됐다.
승진한 임원들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올해 승진한 사장단의 평균연령은 56세로 60세까지 딱 4년 남았다. 이 기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사장들은 짐을 싸야 한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삼성은 재계의 ‘바로미터’다. 그간 성과주의를 주창해온 삼성이 실적 보다 나이라는 기준으로 승진·퇴진을 결정한다면 다른 기업 역시 이 흐름에 편승할 공산이 크다.
‘재계 큰형님’ 삼성은 세대교체라는 대전제를 완성하기 위해 올해 인사에서 부득이 60세 퇴진론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라도 줄곧 고수해온 성과주의와 신상필벌에 따른 인사로 회귀해야 한다. 임직원들이 그간 쌓아온 공든 탑을 나이라는 잣대로 무너뜨리는 것은 삼성 답지 않은 처사다.
유호승 기자 yh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