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와 함께 가장 빠르게 봄소식을 전해 주는 꽃이 바로 변산바람꽃이다. 변산에서 최초로 발견되고 그 모습이 바람꽃속 식물을 닮아 ‘변산바람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변산바람곷은 바람꽃속 식물은 아니다. 바람꽃속 식물은 속명이 ‘아네모네(anemone)’이고 영어명으로는 ‘windflower’로 불린다. 바람꽃, 꿩의바람꽃, 회오리바람꽃, 쌍동바람꽃, 들바람꽃 등은 바람꽃 식물이고,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은 너도바람꽃속(eranthis) 식물이다. 이 너도바람꽃속의 식물은 일찍 꽃을 피우기로 유명하지만 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이 그보다 한 발 앞서 피어난다. 이들이 피어난 뒤에야 바람꽃속 식물들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참고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은 꽃잎이 퇴화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꽃받침은 꽃잎처럼 보이고 꽃잎은 꽃받침에 둘러싸여 수술과 암술을 감싸고 있다. 이 꽃잎의 화색은 약간의 변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흰색의 변이가 자주 관찰되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 풍도바람꽃이라는 이름으로 풍도에 자생하는 변산바람꽃을 아종으로 분류하여 학계에 보고된 적도 있다. 이때 꽃잎의 모양을 주요 특징으로 구분한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군집을 이뤄 자라는 경우 아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변산바람꽃은 남부의 여러 지역에서 자라지만 풍도바람꽃은 풍도에만 자라므로 변산바람꽃의 아종으로 볼 수 있다.
일찍이 우리는 식물학에서 갖춘꽃과 못갖춘꽃이란 용어에 대해 공부했다. 갖춘꽃이란 씨방,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을 다 가지고 있는 꽃을 말하고, 못갖춘꽃이란 이 중에 꽃받침이 없는 꽃을 말한다. 꽃에 있어서 꽃받침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을 돋보이게 받쳐주고 열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데 바람꽃에는 그 꽃받침이 없다. 없다기보다는 꽃받침이 꽃잎의 역할을 하도록 진화를 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완전한 꽃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야말로 바람꽃의 특별한 생존전략이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못갖춘꽃의 형태가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꽃받침을 포기하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과는 달리 식물들은 필요 없는 것을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산의 응달진 곳엔 여전히 희끗한 잔설이 남아 있어 봄이 멀게만 느껴지는 추운 계절에 피어나는 꽃이라서 귀한 대접을 받는 바람꽃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들곤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필이면 왜 그토록 추운 계절을 고집하며 피어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람꽃이 누구보다 먼저 일찍 꽃을 피우는 것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씨앗을 맺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키 작고 보잘 것 없는 바람꽃은 나무가 잎을 내어 그림자를 만들면 광합성을 못하게 되고, 그리되면 씨앗이 여물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꽃을 피우는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다 갖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꽃받침을 포기하고 못갖춘꽃으로 진화를 한 것이다. 필요 없는 곳에 영양분을 헛되게 쓰지 않고 오직 열매를 맺고자 하는 열망으로 남들보다 먼저 서둘러 꽃을 피우는 것이다. 바람꽃의 지혜다. 바람꽃이 지혜로운 것은 자신의 대를 이어갈 수단을 씨앗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다년생식물이 그렇듯이 바람꽃도 작은 알뿌리를 만들어 영양을 저장해 둔다. 그리하여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온갖 환경적 재앙에도 지금껏 살아남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