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년~1895년)는 1845년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생활 환경」 보고서에서 “나는 이토록 비참한 생활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노동자들을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기계’로 만들었다면서 도시 공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을 고발했다. 엥겔스의 이러한 사회 인식은 카를 마르크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47년 공동 집필한 『공산당 선언』(1848년)과 『자본론』(1867~1894년)은 노동가치설을 기반으로 상품→화폐→자본을 설명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에 관한 ‘지식’을 과학적으로 만들어냈다.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 발전 결과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물질적인 삶의 조건이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결정하며, 물질적 삶의 조건에 대한 변화가 역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한 사회의 정신적인 상황이 물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물질적인 상황이 정신적인 상황을 결정한다는 물질주의를 주장했다. 경제적인 힘이 다른 모든 분야에 변화를 일으켜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었으며 변화시킬 수 있는 상상력과 힘을 제공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경제학자이다. 주요한 생산수단이 무엇이며, 생산수단을 둘러싼 사회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인간사회가 역사적으로 원시공산사회(사냥과 채집-무계급)에서 고대노예제사회(토지-노예와 주인), 중세봉건사회(장원-농노와 영주), 자본주의사회(공장-노동자와 자본가), 사회주의사회(모든 생산수단-무계급)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예전에는 땅이 있는 한 인간의 생계는 보장되어 있어 생활수단에 대한 직접적인 사용권이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농민은 땅으로부터 축출되고, 시장 의존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임금과 교환할 수 있는지가 생계유지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노동시장이 인간 행복의 통제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에 의해 강제되는 경제체제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은 서로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과잉투자(과잉축적)를 할 수밖에 없는데 자본주의를 공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시장 생산에 기초한 경제의 동력 그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았다.
자본주의 생산력과 문명 역할을 높이 평가했지만 자본주의의 유구한 장래에 대한 낙관론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를 향한 낙관이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폐지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자연적인 몰락이 아니라 노동자의 계급의식 고양에 의한 적극적 전복이었다. “모든 노동 가능 인구들에게 노동을 균등하게 분배해야 하며, 재산 소유에 따른 생산물의 분배를 노동(또는 필요)에 따른 분배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자본資本(Capital)’은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밥과 고기도 먹지 않으며, 오직 이윤이 있어야 숨을 쉬고, 이윤을 얻지 못하면 죽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본 시장체제’에 대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의 노동’은 자본을 고용해 시장 가격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고 남은 이윤을 차지하는 새로운 사회의 모델이 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의 경제철학은 자본주의 사상의 한 줄기를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등장하여 잘못을 지적하거나 부족한 것을 메워 주었다. 특히 산업화가 고도화되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세계화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에서 사회공동체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와 투쟁의 근거를 제공한다. 그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이미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미래사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던 철학자, 사상가, 혁명가였다.
조재석 대구한의대 사회적경제 교수('응답하라 사회적경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