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지치고 꽃에 허기진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꽃을 찾아 나섰으니 이름 하여 탐매(探梅)다. 눈 속에 핀 매화를 설중매라 하여 귀하게 여기기도 하였지만 그 꽃을 찾아 나서는 마음 이면에는 남보다 먼저 봄을 만나고픈 욕심과 봄을 기다리는 조바심이 들어 있다. 옛사람들이 이처럼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선 것은 매화가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꽃이기도 하지만 춥고 긴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운 매화에게서 자신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매화는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같은 꽃을 두고도 일찍 핀다고 하여 조매(早梅), 추운 겨울에 핀다고 하여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꽃의 색깔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하는데 흰색을 띠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하고 흰 꽃 중에 꽃받침이 녹색을 띠는 꽃은 청매(靑梅)라 부른다. 계절이 갈마드는 봄의 들머리,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걸어오는 설중매는 가히 봄의 요정으로 불릴 만하다. 중국에서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르는데 이는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는 2월이면 매화를 볼 수 있기에 그리 부르는 것이다.
중국사람 못지않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매화 사랑도 대단했다.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고 유언을 남길 만큼 매화사랑에 지극했던 퇴계 이황은 매화에 대한 시만도 1300여 편을 남겼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의 매화음(梅花飮)에 관한 일화는 매화사랑의 끝판왕이라 할만하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김홍도를 찾아왔다. 하지만 돈이 없어 살 수 없어 난감해 하고 있을 때, 마침 어떤 사람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비로 3000냥을 주고 갔다. 김홍도는 선뜻 2000냥을 주고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으니 이게 바로 매화음(梅花飮)이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자신이 꽃을 키우는 이유에 대해 말하길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미물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구하여 근원으로 들어가면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만 구애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화찬은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의 수필집 ‘야언(野言)’에 나오는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말이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추위 속에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보면서 힘든 환경에서도 지조를 꺾지 않는 맑고 고결한 기품과 높은 절개를 본받고자 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원수가 되기도 하는 각박한 세태 속에서 매화를 보며 맑은 정신과 지조를 지키고자 했던 옛 선비들의 탐매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