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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화왕(花王), 모란을 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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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화왕(花王), 모란을 그리는 밤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근래에 새로 생긴 취미 중 하나가 민화그리기이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취미인데 정신이 산란할 때 민화를 그리면 정신이 붓끝으로 모아지고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어 정신 건강에도 좋은 듯싶다. 눈 오는 겨울 밤, 화선지 위에 모란을 피우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멋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민화를 배우면서 처음 그린 그림이 호작도였고 두 번째로 그린 게 모란이었다. 민화에서 모란을 즐겨 그린 것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겼기 까닭이다.

모란은 꽃이 크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위엄과 품위를 지녀 부귀화, 또는 화중왕으로 불린다.
백화의 왕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답게 이명(異名)도 많다. 목작약을 비롯해서 화왕(花王)•백화왕(百花王)•부귀화(富貴花)•낙양화(洛陽花) 등 다양하게 불린다. 목작약은 작약과 비슷한 목본이란 뜻이다. 모란과 작약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란은 목본이고 작약은 초본(草本)이란 점을 상기하면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잇다. 두 꽃이 모두 꽃모양이 장려하고 잎 모양이 단정하여 백화 중에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꽃을 뜻하는 한자의 ‘花’는 풀초 밑에 변화를 뜻하는 ‘化’자를 붙여놓은 글자다. 꽃처럼 변화무쌍한 것도 드물다. 어느 날 불쑥 꽃망울이 터져 올라 눈부시게 피어나 향기를 흘리다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게 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花’란 한자야말로 꽃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글자란 생각이 든다. 알다시피 모란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덕분에 모란은 중국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가장 중국적인 꽃으로 꼽힌다. 모란이 수많은 꽃 중에 화왕으로 불리게 된 것은 꽃 자체의 화려함도 있지만 양귀비를 편애했던 당 현종의 모란에 대한 사랑도 한몫을 했다. 당 현종은 모란꽃을 지극히 사랑하여 장안의 홍경궁에 황제의 권력으로 수집한 수많은 모란을 심어두고 양귀비와 함께 꽃을 즐겼다.
모란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진평왕 때로 알려져 있다. 진평왕 때 “당 태종(太宗)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빛깔의 모란을 그린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왔다”고 삼국유사에 기록이 남아 있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꽃은 비록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 본즉 과연 향기가 없었다는 선덕여왕의 일화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란을 향기 없는 꽃으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란꽃에도 분명 향기가 있고 벌 나비도 날아든다. 한때 고향에 내려가 지낼 적에 아침마다 창문을 넘어오던 모란의 향기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옛 시를 보면 매화 향기는 암향(暗香), 난초의 향기를 유향(幽香)이라 하고, 이에 반해 모란의 향기는 이향(異香)이라고 한 것도 그 향기가 색다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려청자에서도 모란당초문이 어렵지 않게 발견될 만큼 사랑을 받던 모란꽃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유교사회로 바뀐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아취와 고절을 숭상하는 선비들의 시선이 화려한 모란에서 매화나 국화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란에 대한 애상의 열의가 아주 식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 민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민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