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 모럴 해저드에 빠진 공공기관을 질타했던 현오석 전 부총리의 말이다. 그는 공공기관의 부채와 비리, 임금 등 ‘A부터 Z까지’ 살펴보겠다고 밝혔으며, 이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선임되는 공공기관장을 보면 정부는 초심을 잃은듯하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선대위 정책본부 부본부장)과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조직본부 부본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낙하산 인사는 반복된다. 왜 그럴까. 정부의 의지 부족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현재 공공기관장을 선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공공기관장은 크게 세 관문을 거쳐 임명된다. 임원추천위원회 후보 추천→공공기관 운영위원회 심의·의결→임시 주주총회 의결 등이다.
먼저 첫 관문인 임추위는 이사회를 통해 구성되는데 이사회의 과반수를 넘는 비상임이사들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한다. 임추위가 올린 후보들을 심사하는 공운위는 정부위원과 민간위원으로 나뉜다. 이 중 민간위원들은 모두 기재부 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위촉한다.
정부가 추천한 사장 후보들은 낙하산 논란이 있더라도 주주총회를 무난히 통과한다. 주주 지분 중 정부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스공사만 살펴보자. 가스공사는 한전이 20.5%, 정부가 26.2%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가스공사의 지분을 가진 한전은 정부 지분이 18.20%다. 따라서 정부가 점찍은 인사가 주총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사장 선임 전 과정에서 감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운위와 임추위를 열면 그 내용은 각각 알리오와 기재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단 공개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없어 보통 ‘원안 의결’ 정도로만 표시된다. 주주기관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도 마찬가지로 알 길이 없다.
굳어진 제도는 ‘그래도 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공공기관장 선임에 관한 취재를 하면서 많이 듣는 게 “어차피 정부가 뽑으니까요”였다. 임추위부터 최종 임명까지의 복잡한 과정이 결국 낙하산 인사를 임명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임을 공공기관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인사 시스템을 손보자는 주장은 일찍이 많았다. 공운위와 임추위의 회의록에 후보별 점수와 찬성·반대 의결수를 포함해 상세히 공개하자. 주주기관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별도로 공시하자. 공운위의 민간위원 비율을 늘리고 이들을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하자. 심사 기준을 구체화해 공개하자 등이다.
이 같은 대안들을 논의하고 제도로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낙하산 인사의 통과의례로 전락한 인사 시스템을 손보지 않는 한, ‘파티’는 끝나지 않는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