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는 독일어로 '공포, 두려움, 불안'을 뜻하는 앙스트(Angst)와 ‘개화, 만발, 전성기’를 뜻하는 블뤼테(Blüte)의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불안 속에 피는 꽃’으로 의역할 수 있다. 모든 식물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감지하는 순간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위기의 순간, 식물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것은 씨앗을 맺어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대나무는 일반적으로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다. 하지만, 뿌리 번식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꽃을 피워 종자를 맺은 후 그대로 말라 죽는다. 동양란이나 전나무 등도 물이 부족하거나 혹한기 등으로 생존환경이 극도로 열악해지면 유난히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같은 소나무라도 공해가 극심한 지역의 소나무일수록 솔방울을 더 많이 달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비밀 또한 앙스트블뤼테와 무관하지 않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은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풍부한 감정과 다양한 음색을 표현할 수 있는 명품으로 꼽힌다. 그는 94세까지 악기를 만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악기제작방법을 전수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그 비밀을 풀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가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악기 제작에 사용된 목재에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한다.
미국의 헨리 그리씨노-마이어 박사와 로이드 버클 박사에 의하면 1645년~1715년까지 70년간 유럽에서는 소빙하기가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에 생존한 알프스산맥의 가문비나무에 바이올린의 제작 비밀이 있다고 주장한다. 극심한 추위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가문비나무가 극도로 성장을 늦추어 나이테가 매우 촘촘하고 목재의 밀도가 균일하게 되었는데 스트라디바리는 이러한 목재를 이용하여 명품 악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곡지(曲枝)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굽은 가지를 이르는 이 말은 산등성이나 바위틈에서 이리저리 뒤틀린 나무를 가리킨다. 모든 식물은 한 번 뿌리 내린 곳이 곧 제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묵묵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몸을 맞추어 살아갈 뿐이다. 바람이 세차면 바람이 덜 부는 쪽으로 가지를 뻗고, 햇볕이 부족하면 햇살 쪽으로 몸을 비튼다. 뿌리를 뻗다가 바위를 만나면 옆으로 틀어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다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오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 나무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