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긴 동면에서 깨어난 대지가 새싹을 밀어올리고 꽃눈을 틔우며 나무들은 헐벗은 가지에 연두색 새잎을 차려입기 시작한다. 벌레 알에도 푸른빛이 돌고 제비도 지난 가을 비워 둔 옛집을 찾아 날아든다. 인디언들의 표현대로 무엇 하나 한결 같은 게 없는, 날마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3월이 되면 어딘가에 꽃이 피어 있을 것만 같아 자주 숲을 찾게 된다.
꽃만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른 봄 산에서 야생화를 찾아다니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나무가 있는데 한동안 이름을 몰라 답답했다.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여느 나무들과는 달리 제일 먼저 새 잎을 내어달고 연둣빛 안개에 싸인 듯한 이 나무를 보면 신령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봄 산에서 가장 먼저 잎을 내어달고 봄을 알리는 이 부지런한 나무가 바로 귀룽나무다. 이름만 들으면 생소하지만 벚나무 등과 함께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예전에는 이 나무의 잎이 피는 것을 보고 농사일을 시작했을 만큼 늘 우리 가까이에 있어온 나무다. 귀룽나무라는 이름은 구룡목(九龍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명으로는 ‘귀롱나무’, ‘귀롱목’, 꽃이 핀 모습이 마치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하여 ‘구름나무’로도 불린다. 귀룽나무는 주로 정원수로 심는데,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벌들에게 아낌없이 꿀을 나누어줄 뿐 아니라 7월에 열리는 버찌와 닮은 흑색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되어준다. 새들이 귀룽나무 열매를 좋아하여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bird cherry’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귀룽나무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생각이 든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향긋한 꽃향기와는 달리 어린 가지를 꺾으면 고무 타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파리들이 싫어해서 재래식 화장실에 어린 가지를 꺾어 넣으면 구더기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가지를 꺾어 벌통 주변에서 흔들면 벌들이 유순해져서 벌통관리가 한결 수월해진다고 한다. 나무껍질에는 타닌 성분이 있는데 이 정유 성분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했지만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만나는 일도 그에 못지않다. 그저 한 송이 꽃,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닌 꽃의 생애가, 나무의 전생(全生) 함께 오기 때문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더 알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봄은 사람의 걷는 속도로 북상하면서 꽃을 피운다고 한다. 남녘엔 이미 봄이 당도했는지 꽃소식이 무성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잠시 한 그루 나무가 되어보거나 꽃이 되어 보는 일, 눈에 보이는 초록의 생명들에게 말을 걸며 그들을 알아가는 일이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봄을 맞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