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라 흩날리는 벚꽃 길을 걸어 나올 때 지인의 문자를 받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나온 건 문자와 함께 부록처럼 따라온 명자나무 꽃사진 때문이었다. 꽃은 사람을 위해 피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잎이 피기도 전에 가지마다 환한 꽃등을 내어달던 벚나무들이 함부로 꽃비를 뿌려대고 그 뒤를 따라 지는 백목련 새하얀 꽃잎이 누렇게 변색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울해지던 참이었는데 무탈하냐는 문자를 받고 보니 우울도 사치란 생각이 든다. 그저 아무 탈 없이 봄을 건너가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도 번번이 꽃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장미과에 속하는 꽃답게 다섯 장의 꽃잎을 펼친 중앙에 수술과 암술이 다보록한 명자꽃은 집안에서 쫓겨날 운명을 타고난 비련의 꽃이기도 하다. 옛날엔 꽃빛이 너무 매혹적이라 집안의 여자가 바람이 날까 봐 집안에 들이지 않았을 만큼 예쁘기 때문이다. 새대부 집안에선 꽃에 마음을 빼앗겨 글공부에 소홀할까 봐 집안에 심지 않았다. 그야말로 ‘예쁜 것도 죄라면 무기징역감’이라 할 만하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태와는 달리 ‘평범, 신뢰, 겸손’이라는 의외의 꽃말을 지녔다. 뿐만 아니라 마른 섶에 불붙듯 화르르 피어났다 지는 벚꽃과는 달리 명자나무 꽃은 4월부터 5월에 걸쳐 여느 꽃보다 오랫동안 핀다. 초록 잎 사이로 숨은 듯 드러나는 붉은 꽃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고 은은한 향기가 발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산당화, 아가씨나무라는 이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도 꽃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줄지 않는다. 대기 오염에 대한 내성도 강하고 매우 건조한 곳이 아니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생 울타리나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꽃나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봄은 머물지 않고 빠르게 우리의 곁을 지나간다. 지나가는 봄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선 꽃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중에서 소리 없는 꽃 폭죽을 터뜨리던 꽃나무 그늘을 지나며 찬란한 슬픔을 느꼈다면 초록 잎 사이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배시시 웃는 명자나무 꽃 앞에서 아직 남아 있는 봄의 환희를 느껴볼 일이다. 꽃 앞에 앉아서 은은한 꽃의 향기를 잠시라도 흠향해 볼 일이다. 시간의 강물이 지는 꽃잎을 싣고 흘러가도 세상엔 새로운 꽃들이 계속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눈길 닿는 곳에 꽃이 있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