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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판문점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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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판문점의 소나무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위에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의미로 1953년 생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섞어 뿌리를 묻고, 식수 후엔 김정은 위원장은 한강수를,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물을 뿌려주는 합토합수(合土合水)의 기념식수 퍼포먼스는 남북평화와 민족화합의 의지를 다지는 한반도 역사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사철 푸른 잎을 달고 사는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다.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 같은 분은 세한삼우라 하여 송(松)•죽(竹)•(梅)를 꼽았으며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선비의 변치 않는 충절과 곧은 절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나무로 안성맞춤이었기에 사육신 중의 한 명인 성삼문 같은 이는 죽은 뒤에 봉래산 제일봉에 독야청청한 낙락장송이 되겠다고 하기도 했다.
소나무를 순우리말로 하면 솔이다. 솔이란 말은 위(上)에 있는 높고(高) 으뜸(元)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의 ‘수리’라는 말이 술로, 그리고 다시 솔로 변하였다고 한다. 송(松)이란 한자는 옛날 진시황제가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소나무 덕으로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자 공작의 벼슬을 주어 목공(木公)이 되었는데 이 두 글자가 합하여 소나무 송(松)자가 되었다고 한다. 한자 이름으로는 줄기가 붉은 적송(赤松),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주어 여송(女松), 육지에서 자란다 하여 육송(陸松) 등으로 부른다.

한반도에 소나무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6000년 전부터이고, 본격적으로 많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3000년 전부터라고 하니 그 긴 세월 동안 소나무와 더불어 살아왔으니 우리 민족에게 소나무는 더없이 정겹고 사랑스러운 나무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달고, 소나무로 집을 짓고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로 짠 관에 담겨 소나무가 사는 산에 묻힐 만큼 우리 민족은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생을 마감하며 살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 남북정상이 함께 심은 소나무는 반송이다. 보통 소나무는 줄기 중심에 있는 생장점이 길게 위로 자라고 측아는 짧게 나와 가지가 되는 생리적 특성을 갖는 데 반해 일명 다복솔이라고도 하는 반송은 모든 생장점이 거의 같은 크기로 자라서 둥근 우산 모양으로 자란다. 나무 키가 10m 내외로 지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잘 어우러지며 고고한 품위를 지녀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은 수종이다.

소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지력이 낮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소나무는 대표적인 풍매화다.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이 아닌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봄 하늘을 뿌옇게 흐리며 송홧가루를 허공에 풀어놓는다. 물 빠짐이 좋고 일사량이 많아야 잎이 싱싱하고 나무의 자라는 모양새도 좋아진다. 이런 소나무의 생태적 특성 때문에 어렸을 때 잘 보살펴 주지 않으면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활엽수에게 소나무는 제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전운이 감돌던 군사분계선 위에 남북 정상이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를 심은 것은 남북이 오랜 반목과 적대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을 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제 기념식수한 소나무가 전쟁 없는 평화 속에서 통일의 그날까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마음을 한데 모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비록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